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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May 02. 2020

첫 출간부터 등단까지 나의 작가 데뷔기

 창업 관련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대학생들이 물었다. “선생님, 그래서 어떻게 하면 1억을 모을 수 있는 거예요?”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 판매 후 사후관리하는 과정 등 방법론만 제시하는 수업을 하던 중 본질을 꿰뚫는 학생의 질문은 내 안의 본능을 잠 깨웠다. 그래, 내가 처음 창업을 하면서도 진짜 궁금했던 이야기는 사람들의 경험이었지. 그간 수업을 하며 했던 에피소드들, 학생들이 궁금해하는 질문들을 모으자 금세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졌다. 사실 나는 그전부터 글쟁이가 되고 싶었다. 다른 저자의 책을 읽으며 ‘나라면 이렇게 쓸 텐데’, ‘나라면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을 텐데’ 되뇌기 십 수년, 드디어 나도 책을 한 번 써 보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책을 쓴다는 것은, 블로그나 SNS에 끼적거리던 일과는 질적으로 다른 작업이었다. 머릿속에 꽉 차 있던 꽤 괜찮을 법한 이야기가 글로 나오면 유치하고 밋밋하게 변했다. 휴일에 하루 종일 글을 써 보겠다고 카페에 컴퓨터를 싸 들고나갔다가 연거푸 커피 세 잔을 마실 동안 아무것도 못 쓰고, ‘오늘도 글 쓰기는 망했네’ 하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긴 시간 제자리걸음을 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나 혼자 빈 문서를 붙잡고 끙끙대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단 생각이 든다. 컴퓨터를 앞에 두고 멍 때리는 시간이나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 틈틈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번뜩번뜩 떠올랐다. 아웃풋이 나오려면 인풋도 꾸준히 들어가야 했다. 다른 저자들의 책을 읽다 보면 그 속에서 나의 이야기가 찾기 기도 했다. 쓰다 보니 나만의 습관이 생겼다. 밤늦은 시간보다 아침에 쓰는 것이 나에게 맞았다.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카페로 달려가 3시간 정도 글을 쓰고 출근을 했다. 주말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엉덩이 딱 붙이고 앉아 퇴고를 했다. A4 용지 120장 분량의 글들이 모아졌다. 2015년 9월에 시작하여 2016년 3월에 드디어 괴발개발 초고가 완성이 되었다. 완성되었다는 건 사실 거짓말이다. 고쳐도 고쳐도 고칠 것이 끝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선에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았다는 말이 알맞겠다.

 두 번에 걸쳐 출판사 일곱 군데에 투고를 했는데 총 세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인터넷과 책으로 수집한 ‘출판사 투고용 기획서’를 꼼꼼히 읽어보고 내 책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소개글을 덧붙인 다음 원고 전문을 첨부해서 발송을 했다. 아무것도 인증된 것 없는 내 이름 석자를 듣고 누가 선뜻 출판을 해 주려 하겠는가. 원고의 일부를 첨부하거나 기획서만 내는 것은 오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 투고한 세 군데 출판사 중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와 미팅을 했다. 출간으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나의 책 내용에 어떤 부분이 모자라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기죽지 않았다. 어차피 책 출판은 단 한 곳의 출판사와 하게 될 텐데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무수한 출판사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첫 미팅을 했던 곳의 담당자는 원고를 읽어보지도 않고 미팅을 요청했는데, 그래서 다음 투고 때는 원고의 디테일보다 출간 기획서의 한 자 한 자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두 번째 투고를 한 네 군데 출판사 중 다시 두 곳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중 한 곳과 계약을 하게 되었다. 원고의 완성도는 계약 후 편집자와 상의 하에 높여갔다. 담당 편집자님이 부족했던 부분을 많이도 보완해 주셨다. 계약 후 세 달 동안 편집자와 조율을 하며 글을 고치는 기간이 제일 피땀 나는 시기였다. 이제 이 글이 내 손을 떠나면 활자로 찍혀 나온다고 생각하니 단어 하나, 토씨 하나까지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첫 책을 쓰는 초보 작가답게 편집자님을 지리하게 괴롭힌 후 250페이지 분량의 나의 첫 책이 탄생되었다. 그렇게 2016년 11월에 <서른 살, 나에게도 1억이 모였다>가 발행되었다. 

 한 권의 책을 손에 받아 들고 보니 글쓰기에 대한 욕심에 더욱 불이 붙었다. <효도하며 살 수 있을까>라는 부모님에 대한 에세이를 브런치에 연재하기도 하고 서른 살 이후에 부딪혔던 사업 중반의 이야기도 틈틈이 써 보았다. 하지만 누구의 평가와도 상관없는 나 자신의 욕심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나도 글을 더 잘 쓰고 싶다' 하는 원초적인 욕망이었다. 시립도서관에서 하는 ‘시 쓰기' 강의와 ‘소설 쓰기' 강의를 들었다. 나의 글쓰기는 점점 농익어갔다. 어느 누구의 평가와 상관없이 나 자신이 스스로 발전하고 있는 것을 느끼니 만족했다. 은유와 비유를 배우는 시 세계와 독자를 끌고 가는 힘을 배우는 소설 세계에 푹 빠져 들었다. 글공부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던 나는 일 하는 시간을 쪼개어 글공부하는 데에 매진했다. 내 차례가 돌아오면 글을 발표해야 했기에 좋든 싫든 매주 시 한 편을 발표하거나, 한 달에 한 번은 80매 분량의 단편소설 한 편을 써 가야 했다. 글은 마감이 써 주는 것이라 했던가. 혼자의 의지력으로는 결코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소재의 글을 쓰고 다듬고 또 쓰고 다듬었다. 글공부 한 번 옴팡지게 해보고 싶다 결심한 지 2년 만인 2020년 2월, 운이 좋게 단편소설 <사냥꾼들>으로 한국소설 신인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 등단했다.

 글만 쓸 수 있다면 감방에 갇히든 무인도에 떨어지든 괜찮을 것 같다. 최고의 취미이자 최고의 카타르시스 도구인 글쓰기. 작가라는 이름이 내가 가진 어떤 직함보다 가장 소중한 이유다. 2020년 새롭게 시작하는 풋풋한 신인 작가이기에 올해의 결심도 남다르다. 재촉하지 않고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내가 만족할 때까지 고치고 숙성시켜서 좋은 글을 쓰는 좋은 작가로 평생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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