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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Mar 06. 2023

아빠 때문에 버스를 놓치고

 집은 이제 나에게는 먼 여행이다. 집에 내려가기 전에는 일정 조정하랴, 버스 예약하랴... 하지만 귀찮아도 막상 한 번 가면 더 있다 오고 싶은 곳이 집이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도 집은 주기적으로 가야만 하는 곳이고 한 번 다녀 와야 마음이 편한 곳이다. 때가 되면 발길이 절로 집으로 향한다. 나 혼자 사는 내 집이 아닌, 아빠, 엄마가 있는 우리집이 있다는 것,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길, 집에서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쉽지 않다. 대한민국의 교통편이 많이 편리해 졌다지만, 지방 도시에서 다른 지방도시로 이동할 때 자동차가 아닌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이번엔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KTX 노선을 타 보느라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집엘 가 보았다. 새로 생긴 시골의 노선이라 한 번에 우리집까지 연결이 되지 않고, 중간에 무궁화호로 환승을 한 번 했다가, 대전에서 다시 KTX로 갈아타고 창원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대기시간, 환승시간까지 합치면 여섯 시간 즈음 걸렸다. 운전해서 가면 창원까지 3시간이면 닿지만, 나의 운전실력을 나도 믿지 못하고, 부모님 집 한 번 가려다 저승 갈까봐 시간을 더 할애하더라도 대중교통에 의존하게 된다.     


 여차저차 그리하여 집에 다녀 돌아오는 길, 시외버스를 예약했다. 또 다시 환승을 두 번 하고 기차를 탈 자신이 없었다. 시외버스를 타면 다른 지역에 도착한 다음, 또다시 차를 타고 40분을 달려야 우리집에 도착하는 코스였다. 사무실 선배들에게 데리러 와 줄 것을 부탁했다. 시골 살면 이렇게 서로를 도와야 살수 있다. 나도 선배들이 공항 갈 때, 버스를 탈 때 곧잘 태워다 드린다. 일종의 시골 품앗이다.

 오후 5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창원 종합터미널로 향했다. 이전에도 아빠가 시외버스 터미널에 시간 딱 맞춰서 데려다 주는 바람에 겨우 버스를 잡아탄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채근해서 좀 더 서둘러 출발을 했다. 처음으로 엄마와 셋이 아닌, 아빠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며 말이다.

 "우와, 아빠 이 건물 아직도 있네요. 나 애기였을 때 엄마랑 간 기억이 있는데. 되게 낡았다."

 "아빠, 엄마가 늦게까지 가게 보던 날, 아빠가 중앙동엘 데려 갔잖아요. 그 때 처음 용지호수 앞에 생긴 배스킨라빈스 먹어 봤는데. 1991년이었나? 쌍쌍바 100원 하던 시절, 1,000원이면 투게더 아이스크림 한 통을 살 수가 있었는데, 아빠가 1,100원짜리 애기 주먹만한 배라 한 스쿱 사줘서 얼마나 충격이었는데요. 근데 그 때 저엉말 맛있었어요."

 가끔 신통한 내 기억력에 나도 놀라고, 아빠도 놀란다. 얘기 하다 보니 이야기는 이야기의 꼬리를 물었는데 버스터미널에 이미 도착을 했다. 내가 너무 서둘렀던 탓이었을까? 버스가 출발하기 20분이나 전이었다. 아빠는 미리 가 있으면 춥다고 드라이브나 한 바퀴 더 하자며 액셀을 부아앙 하고 밟았고, 나는 순식간에 아빠에게 납치가 되어 터미널 주변을 한바퀴 더 돌며 수다를 이어갔다. 그런데 때는 평일 퇴근 시간이었고, 홈플러스 근처 막히는 구간을 망각했던 아빠는 조바심을 내어 보았지만 나는 결국 또 버스 출발시간 1분 전에 도착했다. 나는 엄마가 바리바리 싸준 무거운 짐을 양손 가득 들고 부리나케 전속력으로 뛰어 보았지만 내가 타야 할 차는 출발하고 없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놓친 버스표를 취소하고 어떻게 해야 시골의 우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물색하다가 충북 청주로 가는 버스를, 신선휴게소에서 환승을 해야 닿을 수 있는 루트를 겨우 검색했다. 사무실에서 1시간 20여 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사무실 선배님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일정 변경. 청주로 와 주시오...."

 선배 둘은 투덜거리며 사우나 갈 일정을 뒤로 미루고 혼자 시골집을 혼자 찾아올 수 없는 나를 데리러 와 주기로 했다. 다음 날 내가 꼭 참여해야 하는 미팅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 날로 일정을 미루기도 힘들었다.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차를 잘 탔느냐고 말이다. 나는 버스터미널 한 구석으로 가서 전화기를 붙들고 키득키득 웃으며 차를 놓쳤다며 이야기 했다. 아빠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고 엄마는 왜 애를 데려다 줄 때마다 고생을 시키냐며 성화였다. 나는... 나는 그 상황이 그냥 너무나 웃겨서 바보처럼 클클거리고만 있었다. 왜 아빠는 매번 나를 늦게 데려다 주는가...     


 20여 년 가까이 아빠는 집에 들렀다 어디론가 떠나는 우리를 데려다 준다. 동생과 내가 집을 나설 때마다. 한국 집으로 돌아간다고 할 때는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을, 꿈 많은 딸들이 중국이고, 영국이고, 미국을 떠날 때에는 김해공항을. 아빠는 우리를 데려다 주고 남는 사람이었다. 때로 우리는 아빠와 싸우거나 아빠에게 삐쳐서 집에 있는 내내 말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 그 때도 아빠는 우릴 데려다 주었고 집에 하루만 머물러도, 한 달을 머물러도, 그 끝에는 항상 아빠가 차로 우리를 데려다 주곤 했다. 표현 참 안 하는 경상도 아빠가 요새는 며칠 집에 머물렀다 가니 서운하다고 말을 하기도 하고 언제 또 올거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니까 아빠는, 사실 우리를 데려다 줄 때마다 떠나 보내기가 참 싫었던 것이 아닐까?


 종합버스 터미널에 덩그러니 앉아 다음 차를 기다리며, 친구에게 아빠에게 납치 당해서 차를 놓쳤다고 이야기 했다. 친구는, 아빠랑 20분 더 행복했겠네, 하고 말했다. 맞다. 친구가 한 말대로, 아빠랑 20분동안 더 행복했으면 됐다. 이렇게 나를 보내기 싫어하는 줄 알았다면 좀 더 있다 올걸. 다음에 창원 갈 때는 일정을 더 늘려서 며칠 더 머물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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