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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Mar 26. 2023

47년 째 진해 벚꽃축제에 갑니다

 마치 라디오 사연과 같은 이야기지만, 우리 부모님은 47년째 진해 벚꽃축제를 함께 다니고 있다. 매 해. 어김없이. 아빠가 군대 갔을 때만 빼고. 내가 창원에 살던 20년 동안은, 나도 매번 빠지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벚꽃축제를 다녔다.

 기억이 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벚꽃나무들 틈에서 찍은 사진들이 있고, 내가 5살 때 즈음은 축제 때 아빠 친구 가족과 함께 멍게 회를 썰어다 팔았던 기억이 난다. 중2 때 태국 사람들이 공연을 와서 전통 팔찌와 같은 액세서리를 팔았는데, 당시에 그런 희귀한 제품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1년이 넘게도 애지중지 차고 다녔던 기억도 있다.


 아빠와 엄마는, 벚꽃이 난분분 흩날리던 봄날, 진해에 가는 버스 안에서 만났다고 했다. 어렸던 아빠 엄마는, 그 후로 수 십 년째 이렇게 지겹도록 둘이 꼭 붙어 다니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세월이 그렇게 쉽게 흐를 줄, 이렇게 나이가 들 줄도 몰랐겠지.

 엄마가 작년에도 어김없이 벚꽃구경을 하고, 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누군가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40년 넘게 남편과 벚꽃나들이를 함께 하셨다고요?” 한 사람과 이렇게 오래도록 같은 곳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세월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테고 좋았던 해 나빴던 해를 거쳤을 텐데, 아직도 둘이 함께 벚꽃구경을 하러 간다.     


 동생과 나도 벚꽃이 피는 계절을 지나치지 못한다. 창원에 잘 들리지 못하는 나도 꽃이 만개하는 때를 기다려 버스표를 끊는다. 일이나 공부 등, 준비하는 것들이 잘 안 풀리는 해는 꽃을 봐도 꽃이 꽃인지 봄이 뭔지 시큰둥할 때가 있고, 어떤 해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꽃도 봄도 다 아름다워 보여서, 벚꽃아래서 솜사탕 하나만 사 먹어도 낭만이 흐드러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빠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둘이 함께 다니는 기분이 매번 꽃과 같지 않았을 것 같다.      


 우리는 현지인이니까 사람이 많은 시간을 피해서 차가 막히지 않는 길로 다니길 잘했고, 야시장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코로나로 몇 해 동안 제대로 축제를 즐길 수 없어서, 아빠는 야시장의 빙고 게임을 못 한다며 아쉬워했다. 낮이고 밤이고, 벚꽃이 필 적에는 날마다 대문 밖을 나선다. 봄을 알리는 가장 첫 번째 지점은, 창원 폴리텍 대학 앞의 벚꽃길이다. 가장 빨리 가득 피는 곳이다. 그다음 팝콘처럼 창원의 전역이 벚꽃으로 지천이 되다가, 벚꽃이 질 때 즈음은 장복산 구도로와 안민고개를 넘어가면 된다. 그러면 2주 넘게 벚꽃을 눈에 가득 담을 수 있다. 열 일본 여행 부럽지 않은 곳이 진해의 벚꽃길이라고 들었다. 여기 벚꽃은 기본적으로 하늘을 덮는다. 하늘색이 보이지 않아야 진정한 벚꽃길이라고 우리는 여긴다. 일례로, 동생이 대학생이 되어 동기들과 서울 여의도 벚꽃축제에 놀러 갔는데, 벚꽃 구경이 끝나고 동생이 친구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벚꽃은 어디 있는데?” 창원에서는 눈여겨보지도 않았던 아기 나무들을 보고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더라며. 동생과 친구들은 서로를 신기해했단다.      


 몇 해 전엔가, 네 식구가 벚꽃 축제에서 모두 모인 적이 있다. 동생과 내가, 아빠와 엄마가 따로 걷고 있었는데, 아빠와 엄마가 슬그머니 손을 잡고 걷는 것이었다. 나는 눈치없는 척, 나도 손을 잡아 달라고 했다. 아빠와 크고 나서 처음 손을 잡아 보았다. 아빠는, “혜미 손이 조그마하네”라고 했다. 오랫동안 남자친구와도 잡았고, 친구들과도 잡았고, 사업상 모르는 사람들과 숱하게 악수하며 잡은 손. 엄마 닮아 살도 없는 작은 손. 아빠는 그간 내 손이 어떻게 생겼는 지도 모르고... 다 큰 딸의 손을 잡아주는 아빠는 아니지만 수십 년째 엄마의 손을 놓지 않고 사이좋게 꽃도 보고 산도 가고 바다도 구경한다니 나는 퍽 만족스러웠다.     


 사심 없이 우리 동네 축제 소개를 좀 하자면(사심 가득인가?), 제61회 진해군항제가 4월 3일 월요일까지 열리니, 만개할 지금 시점에 가서 실컷 구경하시면 좋겠다. 요즘 꽃집에서 꽃 한 다발 사면 5만 원은 우스운데, 평생 가져보지 못한 꽃나무들을 공짜로 볼 수 있다니 한 번 가볼 만하지 않은가. 카메라만 갖다 대면 곳곳이 다 포토존이다. 먼 곳에서 온다고 해도 보람이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1년에 여행 딱 한 번만 가야 한다고 하면, 나는 이 시즌의 진해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주말 낮시간은 사람들이 많으니, 이른 아침, 그것이 어렵다면 차라리 저녁 시간이 지나 밤 벚꽃을 보는 것도 추천드린다. 조명이 아름다워서 충분히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비 소식이 있다면, 비가 내리기 전에 얼른 가서 막바지 벚꽃을 즐겨야 한다, 가벼운 봄비라도 내리면 벚꽃들은 금세 떨어지고 푸릇한 잎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려면 평일에 가는 게 좋지만, 그마저도 막히는 때가 많다.

 진해군항제 시즌에, 진해 사람들은 일상이 많이 불편하다고들 한다. 아무래도 밀려드는 인파로 출퇴근이나 통학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서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혹 방문하신다면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먹거리도 많이 사 먹고 진해특산품도 가득 구매한다면,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되고, 구매하는 사람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어서 서로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창원의 그 많은 벚꽃 나무가 일제의 잔재라고는 하지만, 한국에서 100년 가까이 뿌리내리고 자랐으면 이미 우리 나무고 우리 축제 아닐까. 아직 진해의 벚꽃을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창원사람으로서 꼭 추천해 주고 싶다. 나는 벚꽃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 사실 전국의 웬만한 꽃축제들을 다 가 보아도 별로 감흥이 없을 정도니까.

 그래서 내일, 나도 창원 가는 버스를 끊었다. 오랜만에 2박 3일 동안 창원에서 머물며 아빠 엄마와 꽃도 보고 밥도 먹고 와야겠다.     


 에세이를 쓰자고 마음을 먹고 글을 잡았는데 마무리를 하고 보니 역시 나는 장사꾼인가 보다.(머쓱) 내 동네, 내 부모의 고장이, 아빠 엄마가 처음 만났던 그 장소가, 늘 흥겨우면 좋겠다.          




*이 글은 아무런 대가 없는 주관적인 견해가 담긴 자발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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