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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May 07. 2023

엄마 때문에 울었어

 이틀 엄마집에 머물다 나의 집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부모님 집에 갈 적엔 귀찮은데 올라올 땐 늘 아쉽다. 이제 코로나 핑계도 더 댈 수 없고, 어버이날과 아빠 생일을 맞아 겸사겸사 다녀왔다. 엄마가 싸준 음식부터 살림살이들을 잔뜩 손에 들고 올라오며 앞으로는 부지런히 집에 내려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를 타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하니 엄마에게 메시지가 와 있다.

 “미야~”

 나는 대답했다.

 “응?”

 엄마가 읽었는데 답이 없다. 그런 경험 있지 않은가? 엄마가 이름만 부르고 용건을 말하지 않으면 가슴이 철렁거리는. 예전에는 ‘내가 잘못했나?’였는데, 요새는 ‘무슨 일이 생겼나?’ 하는 걱정부터 앞선다.

 ”왜~~?”

 다시 엄마가 읽었다. 답장을 쓰고 있었던 걸까. 그렇지만 답을 할 시간이 충분히 지났다.

 나는 한번 더 조바심을 냈다.

 “왜 불렀어~~~?“

 이쯤 되면 경상도 여자 숨 넘어간다. 내가 이 정도로 세 번 연달아 물어봤으면, ‘아니야’ 정도는 답을 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이번에 차도 새로 바꿔서 운전이 익숙지 않던데 혹시.. 내가 내 불안함을 못 이겨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엄마의 목소리 톤이 높고 밝다

 “응, 미야~”

 경상도식 이름 부르기다. 엄마가 ‘미야’ 하고 부르면 아무 일 없는 거고 ‘혜미야’ 하고 부르면 심각한 거고 ‘이혜미’ 하고 성까지 붙여 부르면 화가 난 거다. 버스 안에서 조곤히 말했다. 답을 안 해서 깜짝 놀랐다고. 별 일 아닌 걸 확인하고 나는 가슴을 쓸었다.     


 가끔 보는 아빠 엄마와 난 요즘 사이가 꽤 좋다. 부모님은 성인이 된 나에게 성인으로서의 대접을 충분히 해주며, 나도 엄마 집이라고 함부로 뒹구는 대신 청소와 설거지를 하고, 샤워 후 머리카락도 잊지 않고 주워서 버린다. 내가 안 하면 엄마가 해야 할 일이기에. 안 하고 앉아 있으면 엄마에게 하라고 암묵적으로 시키는 것 같으므로. 어릴 적엔 말을 심각하게 안 듣는 딸이라서 엄청 많이 두들겨 맞으며 컸고, 집 밖으로 쫓겨나기도 다반사였는데. 세월이, 그리고 혼자 사는 경험이 나를 철들게 해 주었다.     


 혼자 내 집을 치우고 꾸미고 살아보니 엄마가 평생 했던 뒤치다꺼리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겠다. 딸 둘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긴 머리카락을 엄청나게 뽑아놓고 다녔다. 동네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서 주방을 초토화시켜가며 먹을거리를 탕진했고, 엄마가 차린 밥을 먹으며 우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으며, 속옷 한 번 빨거나 개어본 적도 없고, 생리 때면 금세 차게 되는 휴지통도 엄마 혼자 다 치웠다. 나와 동생까지 도합 30년 가까운 세월을 내내 데리고 살며 치워주고 챙겨주기만 하던 엄마의 삶이 얼마나 귀찮고 힘들었을까. 가끔 내가 집에 내려간다고 하면, 엄마는 바쁘면 안 내려와도 된다고 극구 사양하는데, 어쩌면 그것이 엄마의 속마음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생활했던 매일의 루틴이 깨지고, 딸이 오면 딸 위주의 생활을 또 해야 하니까.


 집은 내 멋대로 해도 되는 곳이다. 내가 내킬 때는 뻔질나게 드나들어도 막는 사람이 없고, 가기 싫으면 1년이 다 되도록 핑계를 대고 찾아가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만에 하나 사업이 망해서 빈털터리가 되면 당연하듯 부모님 집으로 갈 생각을 하고, 그것이 아니라도 쉬는 날이 있으면, 날이 추우면, 연말이니까, 우리 자매는 삼삼오오 집에 모인다. 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신다고 하면, 우린 일정을 핑계 대며 다음이라는 말로 거절할 수 있지만, 부모님에게는 우리에게 바쁘니까 오지 말라고 할 권리가 없다. 부모님 집은 늘 열려있고, 부모님이 안 계시더라도 우리에게 키를 쥐어 준다. 그것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인 것 같다.

     

 시외버스 안에서 걸려온 딸의 전화를, 엄마는 아마 침을 꼴깍 삼키고 받았을 것이다. 나는 안다. 엄마는 울었을 것이다. 내가 이번에 청소를 너무 많이 해서 그랬을까? 사용한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은 내방을 보고 엄마는 허전했을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해본다. 엄마는 우리를 보낼 때마다 아주 많이 울었을 것이다. 티를 내지 않으려 하지만, 다 안다. 나도 사실, 아빠 엄마와 떨어질 때마다 엄청나게 많이 울었다. 첫째니까, 다 컸으니까. 괜히 서로 알면 더 마음 아프니 티를 안 낼 뿐. 아마, 부모님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기차를 탈 때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딸이 무척 많이 울었으리라는 것을.

 오늘 밤과 내일 아침까지도 아빠 엄마가 엄청 보고 싶을 테다. 엄마의 메시지에 답장도 엄청 빨리 할 테다.

 그래놓고 며칠이 지나면 그랬던 감정 따위 금세 잊어버리고, 내 생활로 돌아와 바쁘다고 슬쩍 무음으로 바꿀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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