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일과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개밥 만들기와 개밥 주기 그리고 개 산책 시키기 개똥 치우기.
시골로 이사 오고 나서 개가 다섯 마리나 생겼다. 제각각 사연이 있는 개들이다. 지인이 못 키우겠다고 한 개, 늙어서 파양 당할 개, 주인을 잃어버린 개, 그리고 우리 집 마당에 직접 밥 빌어먹으러 온 개까지. 나는 원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인연이 된 식구들 덕에 바람 잘 날이 없다. 다섯 마리 중 네 마리는 25kg가 넘는 중대형견 들이다. 사무실 식구들이 다 함께 돌보는데 힘이 어찌나 센지 나 혼자서는 산책을 나서거나 어딜 데리고 가지도 못한다. 나의 역할은 개들에게 맛있는 계란국을 끓여 주거나 닭죽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사료만 먹어도 만족할 아이들일 수도 있는데, 자꾸 내 손이 그리로 간다. 시중에 판매하는 식품을 사 먹여도 되지만, 덩치 좋고 먹성 좋은 녀석들 사 먹이기에는 살림이 거덜 날 판이다. 직접 삶고 데치고 말리고 만들다 보니 거의 개밥 전문가가 되었다. 내가 맛있는 걸 많이 주니 개들이 나를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거의 틀림없다. 그래서 주말에도 개밥 주는 일과 때문에 쉴 수가 없다.
다섯 마리 중에서 노견 뚱이는, 멧돼지를 사냥하는 유해조수 팀에서 일하던 사냥개였다. 열 살이 넘은 뚱이가 사냥터에서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어지자 목줄에 묶여 밥만 축내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사냥꾼 형님을 알고 지내던 사무실의 선배가 딱히 좋은 대접을 받을 리 없는 뚱이를 데리고 왔다. 전 주인은, 뚱이를 보내며 십 년 넘게 산 개니, 잘 살아봐야 1년을 살 거라고 했다. 우리 집에 처음 온 뚱이의 상태는 말도 못 하게 엉망이었다. 털은 푸석푸석해서 손으로 집으면 털이 한 움큼 빠졌고, 앞 이빨은 거의 다 빠져 앞니가 두 개 밖에 남지 않았다. 멧돼지를 입에 물고 털다가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잡은 멧돼지 수가 100수가 넘으니 그럴 만도 하다. 농가를 지키던 자랑스러운 군견이다. 뚱이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너무나 많아 조금만 기척 없이 다가가도 화들짝 놀라곤 했다. 6개월이 지나도록 녀석은 나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고 데면데면했다. 자기를 데리고 온 남자 선배 말만 들은 척 만 척, 자기 집에 돌아가고 싶었던지 여러 번 철장을 넘어 탈출 시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뚱이가 우리 집 터주대감이었던 도도와 개껌 하나 때문에 살벌하게 싸운 일이 생겼다. 앞니는 다 빠져서 어금니로 겨우 먹는 게, 식탐은 매우 강했다. 도도는 뒷다리에 금이 갔고 뚱이는 귀를 다 물어 뜯겨서 피가 철철 났다. 나는 개싸움이 그리 무서운 것인지 처음 알았다. 싸워서 귀에서 피가 철철 나는 뚱이를 데리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선배에게 울며 전화를 걸었더니 선배가 도착하기 전에 다친 부위를 단단히 압박해서 지혈이 되도록 해 두라고 했다. 나는 너무 세게 묶으면 뚱이가 아파할 것 같아서 붕대를 들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얼굴을 동여매어 두었다. 잠시 후 도착한 선배가 경악을 했다. 지혈을 하라고 시켰더니 붕대를 느슨하게 감아서 그때까지도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크게 다친 것이 아니라서 지혈을 하고 약을 발라 두니 며칠 만에 나았다. 동물의 회복속도가 그렇게 빠른지 그때 처음 알았다. 개들이 서로를 식구라고 생각하고 싸워서 이 정도로 멈춘 것이지, 서로 죽이겠다고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면, 한 놈이 죽을 때까지 싸움이 끝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는 그로부터 한 달 정도를 개싸움 트라우마에 심하게 시달렸다. 생각하면 기분이 나락으로 툭 떨어져 버렸다. 싸우던 개들에게 그만두라고 소리치던 내 목소리, 피나던 개들을 씻기자 하수구로 내려가던 빨간 핏물, 생각할수록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던 장면이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절대 단독으로 이 개들을 데리고 산책하지 않는다. 대형견은 소형견들과 다소 결이 다르다. 물론 덩치는 송아지 만한 것들이 애기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기도 하지만, 잊을 만할 때 즈음이면 늑대의 유전자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데 이것에 대한 경각심이 반드시 있어야 개물림 사고 같은 것이 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가끔 우리 개들이 철장에서 살고, 쇠목줄을 하는데 대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 겪어봐서 모르시겠지만, 큰 개들이 다 레트리버처럼 순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싸운 개들을 회복시키려 처음으로 개 보양식을 찾아보았다. 제 때 지혈을 해주지 못한 미안함과, 개껌을 줄 때 떼어놓지 않았던 나의 부주의함, 내가 개들을 다치게 했다는 생각에 몇 날 며칠을 보양식을 삶은 국물에 밥을 말아 주었는데 아팠던 개들이 아픈 줄도 모르고 돼지 소리를 내며 꿀떡꿀떡 밥을 삼키는 것이었다. 뚱이는 아마, 그간 사냥을 하며 멧돼지의 내장이나 고기, 그 밖의 많은 좋은 음식들을 먹긴 했으나 닭고기의 부드러움이나 황태국의 감칠맛을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다. 원래 잘 먹었으나 더 잘 먹는 뚱이를 보니, 내 밥도 잘 안 차려먹던 내가 자꾸만 부엌에 들어가 뭘 만들어서 통에 담아 사무실로 나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뚱이와 나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그 데면데면하던 애가 늙은 몸을 끌고 나에게 겅중겅중 뛰어 왔다. 엉덩이를 만지면 기겁을 하며 경기하던 애가 자기를 만지라고 엉덩이를 드밀거나, 내 차가 들어오면 목청 터지게 짖어주는 것들. 나는 늙은 개가 이렇게 사랑스러울 줄 몰랐다. 잘 먹이자, 푸석푸석하던 뚱이의 털이 윤기가 나도록 반들반들해졌다. 뚱이는 우리 집에 온 지 벌써 4년이 되었다. 처음에 왔을 때 열 살이 넘었을 거라고 했는데, 어림 잡아도 지금 14, 15살은 된 것이다. 대형견 치고는 비교적 오래 산 거라고 한다.
작년 가을에 뚱이를 보내야 할 줄로 마음의 준비를 한 적이 있다. 그렇게 먹는 것을 좋아하던 자식이 어느 순간 곡기를 딱 끊은 것이다. 하루 동안 밥을 먹지 않았을 때, 우리는 뚱이가 속이 좋지 않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삼일째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던 날, 모두들 마음의 준비를 하자고 했다. 물만 간신히 삼키는 뚱이에게 꿀물을 타 주었더니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더운 날에는 찬 꿀물을, 추운 날에는 따뜻한 꿀물을 타주면 한 대접을 꿀꺽꿀꺽 삼켰었는데 말이다. 나는 이대로 죽을 거냐고 잔소리를 하며 아침저녁으로 뚱이의 잇몸에다 꿀을 발라 주었다. 짭짭거리며 억지로 삼키던 꿀이, 뚱이가 먹는 전부였다. 강아지 죽음에 대해서 많이 찾아보았다. 죽기 전에 많이들 곡기를 끊는다고 했다. 어떤 강아지들은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들키기 싫어서 홀연히 사라져서 혼자 죽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나는 혹시 뚱이가 도망갈까 봐 목줄이 느슨해질세라 꼭꼭 묶어 두며 꿀 발라주기를 멈추지 않았다. 뚱이가 좋아하는 닭국, 황태국도 매일 바꿔줘 보고, 간식도 넣어 주었다. 그런데 7일째 되던 날, 집에 넣어놓은 간식 하나가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 나는 갸우뚱 거리며 뚱이에게 메추리 말린 간식을 하나 더 줘 보았다. 느리지만 아주 맛있게 꼭꼭 씹어 먹는 것이었다. 나는 사무실이 떠나가라 뚱이가 살았다고 소리를 쳤다. 그리고 사료 량을 조금씩 늘려가며 건강을 회복했다.
그리고 입맛을 찾은 뚱이는 지금도 간식창고의 간식을 다 동내며 아주 건강하게 살고 있다. 암컷인 작은 강아지 길동이가 생리를 할 때면 늑대 울음소리를 내며 꽁무니를 졸졸 좇아 다니면서. 우리는 뚱이가 죽으려면 아직 멀은 것 같다고 농담하며 웃었다.
지금이 어쩌면,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강아지 다섯 마리가 아직 곁에 있고, 부모님과 친구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 곁에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 하나둘씩 떠날 테지만, 예정된 대로 어느 날 뚱이가 떠나거나, 어느 순간 예상치도 못하게 건강했던 다른 강아지가 빠른 이별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렇지만 나는 늘 최선을 다해 주었다. 산책 한 번 더 해줄까? 망설여질 때면 그냥 데리고 나갔고, 사람 먹는 소시지 주면 안 될 텐데? 생각하다가도, 견생 뭐 있나 싶어서 개들이 환장하는 것 먹여주며 즐겁게 살도록 해 주고 있다. 아마 개들도 나와 있는 것이 좋으니 내가 올 때마다 그렇게 기립해서 폴짝폴짝 뛰고, 내가 집에 가면 입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슬픈 표정을 지어주는 것 일거다.
예상치 못하게 내 인생에 들어온 강아지 다섯 마리. 만일 이 강아지들이 다 내 품을 떠나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내가 강아지들 가는 길목까지 다 지켜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혹시 내가 먼저 죽어야 해서 이 아이들이 어떻게 될까 걱정하는 것보다, 슬픈 것이 나의 몫이 되더라도 끝까지 내가 챙겨줄 수 있는 생명들이라 참 다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