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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Oct 22. 2023

시골 마을을 취재하는 기자입니다

-음성군 유튜브 기자 비하인드


     

 벌써 우리 마을의 유튜브 기자가 된 지 2년 차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음성군에 대해 신기하고 궁금한 것이 많은 시절, 꽤 잘 관리된 음성군 블로그를 뒤적거리다 모집공고를 보게 되었다. 시골생활 브이로그를 운영하던 나에게 딱 어울리는 일이었다. 그렇잖아도 시골의 방방곡곡을 놀러 다니며 영상을 만들던 차에, 군을 대표하는 기자가 될 수도 있다고? 당장에 신청서를 접수했다. 내가 이 마을과 얼마나 사랑에 빠졌는지. 그럼에도 나는 아직 시골을 잘 알지 못하는 새내기이기 때문에 얼마나 참신한 시각으로 마을을 취재할 수 있는지. 신청서에 꼼꼼히 담은 애정 어린 마음 덕분이었을까? 그 해 유튜브 기자로 선정되어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 기록해 놓는 곳곳이, 훗날 보면 아련해질 추억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영상에 담아내고 싶은 것들이 그런 것이었다. 내가 무심결에 찍은 읍내의 배경을 보고 한 구독자가 댓글을 달았다. 화면 뒤에 나오는 모 식당에 가본 적이 있냐고, 몇 해 전 그곳에서 알바를 했었는데 그 시절과 그 동네가 너무 그립다고. 수년 후에 나도 그런 마음이 될 것 같다.      


 우리 동네에 대해 자랑을 해 보자면 제일 자랑스러운 것은 동네 주민들의 따뜻함이다. 따뜻한데 결코 과하지 않다. 그 경계를 기가 막히게 잘 지키는 것이 우리 동네 사람들의 특징이다. 처음 기록은 유명한 감곡성모순례지 성당이었다. 언젠가부터 신은 믿지만 교회를 믿지 않는 나는 실로 오랜만에 성당을 방문했다. 감곡성당은 특이하게도 신발을 벗고 들어가 미사를 드리는 곳이었다. 쭈뻣쭈뻣 거리며 자리를 잡는데 누군가 뒤에서 나에게 스윽 실내화를 건네주었다. 오랜만에 외우는 기도문이 생각날 듯 말 듯했다.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 또 주보를 스윽 밀어주는 것이다. 이곳은 성지순례로 유명한 성당이라 미사를 마치고 보니, 나처럼 외부에서 온 교인들이 많았다. 이곳 사람들은 외지인들이 와서 처음이자 마지막일 미사를 드리고 간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교인들이 일일이 손님들을 챙겨가며 미사를 드리는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일요일 오후의 성당 전경을 두리번 거리고 있자니 처음 온 사람 티가 났던지 누군가 또 외치신다 ‘점심 식사 하고 가유.’      


 우리 마을엔 청소년 자치구가 있는데 청소년 스스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결정하여 진행하곤 한다. 나는 청소년들이 운영하는 일일카페에 참여를 해 보았다. 동네의 꽤 큰 독채 카페를 사장님께서 빌려주신 덕분에 아이들은 직접 에스프레소 기계를 잡고 음료를 제작해볼 수 있었다. 텀블러를 가지고 가면 음료 한 잔을 무료로 준다고 했다. 나는 따뜻한 라떼를 한 잔 주문했다. 처음 커피를 만들어 보는 어린 사장님들이 뽑아준 커피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맛있었다. 그러게. 내 말이. 학교 다닐 때 학교 외의 이런 활동을 많이 해보는 것이 기억에 남는 전부인데. 단체로 서서 “안녕히 가세요” 하며 배꼽인사를 하는 아이들의 에너지에 기분이 좋아졌다. 어릴 적 우릴 보고 느껴진다고 말하던 어른들의 눈에 보이는 젊음이 이런 거구나. 어쩌면 커피 맛은 그들이 버무려준 젊음의 맛이 아니었을까.

    

 장기기증 신청도 했다. 각 지역의 보건소마다 장기기증을 신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물론 인터넷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취재를 위해서 보건지소를 찾았다. 신청서를 쓰고 나니 얼마 후에 장기기증 인증 스티커와 카드가 집으로 날아왔다.

 의외로 사람들이 보건소를 찾지 않는 것 같다. 웬만한 약을 타는 데에는 보건소만큼 편리한 곳도 없다. 게다가 금연 프로그램도 무료로 실시하고 무료 검진을 할 수 있는 항목도 많다. 보건소에서는 치매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었다. 할머니들은 색연필과 책을 들고 와서 보건소장님의 수업에 따라 율동도 하고 그림공부도 했다. 어르신들의 일주일 중 낙이라고 한다. 할머니들이 머무르는 노인정을 찾았더니 티끌 하나가 없다. 매일 쓸고 닦으며 평생을 보냈던 할머니들의 습관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식사를 안 했으면 밥 먹고 가라는 할머니들의 말에서 옛것이 사라져 가는 지금도 여전한 어르신들의 정을 느껴본다.


 콘텐츠 테마 중에는 ‘걸음마’라고 하는 우리 동네를 걸어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우리 동네에는 열여섯 가구만 사는 작은 산골 마을도 있고 다리 하나만 건너면 충북 음성군 감곡면에서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으로 이어지는 지점도 있다. 아파트 단지들이 즐비한 동네인데, 조금만 걸으면 전천후 논밭이라 강아지와 실컷 뛸 수 있는 공간도 많다. 시골이지만 변화도 빠른 곳이다. 한 해 한 해 다르게 없던 건물이 생기고 도시에 있는 여느 브랜드의 프랜차이즈도 들어왔다 사라지는 곳이다. 그 전경을 걸으며 담는 것이 의미 있었다. 동네가 변하면 변할수록 내가 담아놓은 영상의 의미가 커질 테니까.  


 어릴 적을 생각하면 눈앞에 보일 듯 선명하다. 내 기억력을 맹신했던지 나는 어릴 적 기억에 한치도 틀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내 고향의 30년 전 영상이 떠도는 것을 보았는데 나의 기억과는 다르게 (당시의 필름의 영향이었는지) 훨씬 뭉툭한 느낌의 그림이었다. 낮은 아파트, 상점 간판, 사람들의 옷차림, 보도블록의 생김새 까지도, 결코 기억력으로는 잡을 수 없는 디테일이 영상 속에는 남아 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수년 전에 찍은 과거의 내 사진이 촌스러워 종종 지워버리곤 했는데 몹시 후회가 된다. 더 많은 세월이 지난 후 다시 보면 그저 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과거이니 말이다.

 시골에서 할 일을 하나 더 만들어 간다. 좋은 소일거리이기도 하고 보람 있는 일이라 무척 즐겁다. 시골에서 할 일 정말 많다. 하면 할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끝없이 많다.     







시골 특파원의 우리 동네 이야기들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eflVAOwOm7l7PJPo6vmYHPyNJZczg6T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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