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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Jul 03. 2018

도착하지 못한 출발 - Human Flow

#1. 다시, 떠나려고 해

J에게,



올해 내내 다시 글을 써야겠다 생각했어.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만하다 결국 7월이 되어버렸네. 한해의 절반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날려버린 셈이야.


여전히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지만, 정리하면 어느새 2019년이 되어있겠지. 그래서 정리되지 못한 생각 위에 몇 개의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마침 창 밖으로 비도 오고, 편지 쓰기 좋은 날이야.


지중해 @Human.Flow


마지막 편지를 받는 사람이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첫 편지는 당연히 너였어. 우린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했잖아. 돌아보면 제법 근사한 파트너였어. 처음에 함께 기자를 준비했던 건 지금 생각해도 허세허세했지만, 결국 그것이 우리의 긴 대화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어. 즐거운 시간들이었어.


이제는 둘 다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어려운 세계를 살아가고 있지만 너는 그래도 줄곧 노력하고 있지. 하지만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 길을 나섰는데, 어느새 길에 갇힌 느낌이었어.


타마자 쉼터, 독일 @Human.Flow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인도주의 단체로 가겠다고 했을 때 너는 망설이지 않고 내 편을 들어줬지. 오랜만에 내 눈이 반짝반짝 거렸다고, 너는 말해 주었어. 요즘 난 그 말이 자주 생각나.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로부터 불과 몇 년 멀어졌을 뿐인데 벌써 꽤나 소진된 느낌이거든. 나를 두근거리게 했던 건 뭐였을까. 지금의 나를 가두는 것은 무엇일까.


글을 써야겠다는 각오는 아이 웨이웨이 감독의 다큐 "유랑하는 사람들 Human Flow" (2017)을 본 뒤부터였어. 2시간 20분짜리라 도저히 함께 보자고 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이 다큐에 대한 이야기를 너와 함께 나누고 싶었어. 덕분에 어쩔 수 없이 글을 써야겠구나 생각했어. 말로는 도저히 다큐를 소개할 길이 없겠더라구. ㅎ


전쟁을 피해 안전한 땅으로 @Human.Flow


"Human Flow"는 지금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어. 이 시대의 대서사시가 가난과 차별에 맞서 정의를 향한 진일보에만 있는게 아니라, 여전히 분쟁과 기아를 피해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온정에 머물러 있다고 이야기해.


어떻게 보면 우리 인간은 후퇴했는지도 몰라. 인간이 동물과 신을 극복하고 AI와 패권을 겨루는 이 중차대한 시점에 고작 '최초의 인간의 권리'를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주목해야 한다니...  


바다를 건너, 삶이 뿌리내릴 수 있는 곳으로 @Human.Flow


아무도 저희에게 길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제 삶을 어디서 시작해야 하죠?


숫자와 풍경보다도, 어느 여성 난민의 저 한 마디가 훅 찔러왔어. 다큐를 본 사람들 중 누가 답할 수 있을까? 누구도 답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까? 세월호가 던진 질문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이 질문은 그 이상이었어.


아무래도 나는 당장 세계시민이나 인도주의자가 되기는 힘들 것 같아. 살아온 관성이 있으니. 하지만 적어도 인간의 길에는 오르고 싶어. 그래서 사람이 살기 어려운, 이 곳 한국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나라들로 걸어가볼까 해. 글을 징검다리 삼아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보면 새로운 길도 보이겠지.


첫 편지가 그대여서 즐거웠어. 또 쓸께!





나는 살 권리를 원한다
뛰어오르려는 표범과 같이
싹을 틔우려는 씨앗과 같이
나는 최초의 인간의 권리를 원한다.

- 나짐 히크메트, 터키 시인 (1902-19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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