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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Mar 07. 2019

대신 점심시간을 없애겠습니다

야간 대학원


15년간 일만해온 내게 특별한 선물을 했다.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것.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십년간 아내와 농담처럼 약속한 것이 있어 생각보다는 쉽게 결정했다. 물론 주경야독이다.


"네가 30에 대학원 갔으니 난 40에 간다!"


농담이 진담이 됐다. 사실 특별히 공부를 하고 싶었던 주제가 있었던 아니었는데 아몰랑 질렀다. 왜냐면 단서조항때문이었다.


"그 때까지 오빠가 결정 안 하면, 내가 박사 한다."


가방끈에 연연하진 않았지만 두 단계 격차는 꽤나 신경이 쓰였다. 놀림이 조롱으로 발전될 수 있는 위태로운 간격이었다. 데드라인은 다가왔고 나는 공공대학원 글로벌거버넌스학과에 진학을 결정했다.


두번째 스물이 찾은 강의실. 앉아만 있어도 좋았다 ^^




"도시에 대한 권리는 누가 가지는가?"

"커먼즈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20C와 21C를 가르는 사건은 무엇인가?"


겨우 이틀 수업이었지만 오랜만에 질문 폭포수행을 받으니 정신이 번쩍들었다. 질문도 시선도 너무나 신선했다. 사실 모든 문제는 질문이 반을 먹고 가는데, 업력이 쌓이면 새로운 시각을 기대하기 어렵다. 예상되는 피드백을 생각하면 사고 패턴은 안전한 틀 속에 자리잡기 마련이다. 죽도로 시원하게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발제에 손을...)


대학원은 생각보다 재미있을 것 같다. 당초에 이직이나 경력전환을 염두에 두었던 게 아니었던 만큼큰 목표는 없었지만, 솔직히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하는 불안함은 있었다. 물론 본인하기 나름이겠지만 학교의 방향과도 맞아떨어져야하니 타이밍이라는 운도 무시할 수 없다. 공공대학원은 '사회혁신'이라는 흐름을 파일럿 테스트 중이었고 다행히 나는 그것을 만날 수 있었다.




점심시간 실험의 첫 동료들


"대신 점심시간을 없애겠습니다."


대학원 이야기는 앞으로 창창 할테니 오늘은 대학원행과 맞바꾼 점심시간 이야기를 남겨두어야겠다.


저녁 6시 50분 수업에 들어간다는 건 직장인으로써는 쉽지 않다. 물론 출근시간을 한 시간 정도 앞당기면 깔끔하지만 집안 사정상 딸 등원을 시켜야해서 그건 무리였다. 그래서 생각해낸게 점심시간 생략!


물론 수업이 있는 이틀간만이다. 한국은 점심시간에 대한 금이야옥이야 정서가 있어서 어느 정도는 함께 해야하는 부분이 있다. 일전에 더블린 본부를 방문했을 때 그 친구들은 거의 점심시간 없이 일했다. 샌드위치나 케밥을 사서 자리에서 먹으며 일하는 동료들이 태반이었다. 다행히 대표도 그런 본부 문화를 이해하고 있어서, 제안은 흔쾌히 수용됐다.


경험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점심시간 생략이 내겐 그랬다. 모두 점심을 먹을 때 나만 자리에 앉아 주먹밥이나 떡으로 때우며 일을 하는 건 어딘가 괴이한 풍경이었지만, 그로인해 5시 반에 퇴근하고 수업을 듣게 되자 너무나 기뻤다. 업무도 일상도 좀더 활력이 생겼다. 내 시간의 주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당연했던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내게 적합한 답을 찾아가는 것.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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