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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Mar 04. 2019

글이 길이 되는 삶

NGO의 삶


2월,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이제는 경계인의 삶에서 내려오자 결심했다.


나는 십여년을 홍보인으로 살아왔다. 처음 대행사 문을 두드릴 때에는 PR이었고, 대기업에서는 홍보와 대외협력으로, 이 곳 NGO에서는 커뮤니케이션으로 불리는 세계에 속해 있는 삶이다.


커뮤니케이션 세계에 몸 담고 있는 동료들은 저마다 개성만점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좀처럼 자신의 글을 쓰지 않는다. 이유는 이미 업무에 자신의 모든 글감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의 블로그나 SNS에는 쓸 말도 없고 쓰고 싶지도 않다.


그것은 에너지보존법칙상 당연한 귀결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끝내기로 했다. 두 배의 노력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콘텐츠를 절반으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이미 세상은 조직이 말하는 것에 크게 귀기울이지 않고, 정성스레 만든 페르소나의 유통기한도 너무나 짧다. 양적 팽창은 디지털 쓰레기만 늘릴뿐이다. 그 때 번스타인의 칸타타가 들려왔다.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시모어 번스타인 외, 2017


앤드루,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대단히, 정말 대단히 중요한 말이에요. 너무도 많은 음악가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요? 그들은 (영적/ 정서적/ 지적/ 신체적) 통합을 음악적으로 이루고는 피아노에 두고 그냥 가버려요. ... 그들은 음악적으로 이룬 통합을 일상의 삶으로 가져가는데 실패합니다. 삶과 조화시킬 수 있는 통합을 말이죠. p.233

- Seymour Bernstein





"그 때 왜 NGO의 삶을 선택한거죠?"


하아...... 깊은 한숨과 함께 몸이 잦혀졌다. 아득히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내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미안했고 한심했다. 2년 반을 돌아 겨우 다시 출발선 위에 선 느낌이랄까.


일과 삶의 통합. 나는 이것을 찾아 NGO의 삶을 택했었다. 정확히 그랬다. 하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너무나 컸기 때문인지 나는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일은 일대로, 삶은 삶대로 흘러갔다.


지난 2년 반을 복기했다. 그 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대기업 퇴사는 변함없을 것 같다. 그럼 NGO는? 조금 어렵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흘러흘러 미지의 대륙에 닿았다. 기아, 기근, 에볼라, 인도주의, 산사태, 가뭄, 아일랜드, 에티오피아, 북한 등등의 키워드들은 모두 그 나름의 가치가 있었다.


후회할만한 건더기가 없어 속상해할때 약 5년전 쯤의 작은 다짐이 머리를 스쳤다.





"죽을 때까지 10개의 직업을 갖자!"


그 곳은 천호동의 작은 횟집이었다. 해병대 출신의 사장님은 IMF 때 건설업 일자리를 잃고,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10년 정도 택시를 몰았을 때 요리를 배우고 싶어 모은 돈을 가지고 일본으로 넘어갔다. 그 곳에서 주방일부터 회 뜨기까지 닥치는 대로 배우셨다. 30년간 세 개의 직업을 거치셨다며 허허 웃으셨다.


그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인생은 신비하다. 몇 년후 우리만화연대에서 만화를 배우고 관련 기고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로써는 첫 프리랜서 작가의 삶이었다. 그 삶은, 딸아이가 태어나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에도 밤낮으로 리서치를 하며 준비할 정도로 즐거웠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내겐 두 번째 직업이었다. 기획이 글이 되고, (좁은 의미로) 글이 길이 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참고로 내가 생각하는 직업은 경제적 도구이다. 소득을 늘리건, 지출을 줄이건)


그 때 무슨 술을 마셨는지 호기롭게 죽을 때까지 10개 직업을 가지자 다짐했다. 이제 두 개의 직업을 거쳤고, 진정한 활동가로 거듭난다면 세 개를 달성하게 된다. 그 밖에도 두 개 정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문득 마지막 직업을 정했다. 무슨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닌데 '인간'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어떻게 경제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여차여차 긴 여정을 거쳐 다시 길 위에 섰다. 마지막 직업 '인간'의 길을 찾는 글쓰기의 시작이다



좁아서 두근두근, 요시타케 신스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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