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엉군 Mar 10. 2019

그래, 같이 화산 보러 가자. 10살에!

마지막 직업, 인간 #03


올해 딸아이는 부쩍이나 자신의 생일을 챙겼다. 다섯 살이 그런 나이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녀석이 기특했다. 나는 녀석에서 제대로 된 선물을 해주고 싶었고, 아이의 이름으로 선물을 보냈다.


"그게 무슨 애 선물이야. 오빠 선물이네."


첫 선물이 도착했을 때 아내는 직구를 던졌다. 역시 전문직. 아이의 반응도 시큰둥했다. 녀석의 이름이 선명하게 써있었지만 아직 글을 모르니 첫 단계 실패. 마음의 선물은 덩그러니 소파 위에 남겨졌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스탠드를 켜고 선물이었던 책을 한장 한장 넘겨봤다. 너무 일렀나? 자책이 밀려왔지만 이미 연간구독 지불완료. 후회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 내게 아이가 다가와 이것저것 물으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 달, 녀석은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내게 말한다.


"내셔널 지오래피 보자"




"Conjuring Clouds", Berndnaut Smilde, 내셔널 지오그래픽 3월호


"아이에게 무엇을 남겨 줄까?"


베이비부머 세대였던 부모님은 자식들을 아낌없이 지원하셨다. 우린 그 기대를 멋지게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그럭저럭 잘 살고있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날아오르시길 바라며 타향살이를 뒷바라지 하셨고, 아버지는 내게 취중진담을 전하며 고단한 시절을 참아내셨다. 아버지는 나름의  성취를 하셨다. 서울에서 자리를 잡으셨으니. 하지만 나는 이 곳 서울에서 더 무엇을 바래야 하는걸까. 그걸 성취하지 못한 나는 내 아이를 위해 또다시 활주로를 닦는 부모가 되어야 하는걸까 생각하고 생각했다.


작년말, 아빠잡지 '볼드 Bold' 주제는 '유산 Heritage'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유형이 아니라 무형의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대강 이런 내용의 구성이었다. 아이에게 막연히 따뜻한 사람이 되라고 말했던 나는 그 즈음부터 좀더 구체적인 키워드를 찾아나섰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의 생일 때 처음으로 구체화되었다.




Yellowstone, USA, from the Irish News


"그래, 같이 화산 보러 가자. 10살에!"


주말에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다녀왔다. 내가 대출할 책이 있어 찾은 거였는데, 아이가 뜻밖의 만남을 가졌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키즈 콜렉션의 공룡, 화산, 미라. 셋 다 녀석이 직접 골라온 거였다. (절대 의도한 바 없었음요)


우리는 그 중에서도 '화산'에 푹 빠져버렸다. 공룡은 이미 멸종했지만, 그 시절 공룡을 멸종시킨 유력한 용의자 중 하나인 화산은 여전히 이 시대에 함께 살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도 판과 판이 부딪히며 새로운 섬이 태어나게 만들고 있었다. 아이슬란드, 하와이, 미국 옐로우스톤, 에콰도르, 일본, 인도네시아 .... 곳곳에 고대의 숨결들이 현존해 있었다.


"나중에 같이 화산 보러 갈까?"


내가 아이를 보며 물었다.


"그래 우리 같이 화산 보러 가자. 10살에!"


아차. 내 빈말에 녀석이 시간을 못 박았다. 이 녀석은 나중에 사업가가 되려나.




섬이 태어나다. 화산 공부로 모아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무엇이 되었건 우리 미래의 여행지에 한 곳이 더 추가되었다. 녀석이 아직 뱃속에도 없었을 때, 튀니스에서 저 남쪽의 사하라를 바라보며 나는 아내에게 말했었다.


"사막은 나중에 딸이랑 가야겠다."


그리하여 딸이 태어났다. 그리고 그 녀석이 화산 방문일정을 못 박았다. 이제 5년 남았다.


부디 나의 선물이 너무 많은 녀석의 탐험심을 일깨우지 않기를. 내 위시 직업리스트에 탐험가는 없으니.


평생 기억에 남을 내셔널지오그래픽 3월호




작가의 이전글 대신 점심시간을 없애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