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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Apr 19. 2019

46살까지는 로마인으로

청년의 조건


16일은 세월호 5주기였다.


우리집 꼬맹이도 5살이 되었다. 그 5년간 내 인생 궤도도 조금 수정되었다.



응답하라 2014


2014년 4월 16일, 당시 나는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전 10시쯤이었을까. 팀 동료들과 TV로 세월호 오보를 생중계로 보고 있었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모두 구조되어서.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그 이후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그리고 50일후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들었다.


1년이 지나고 아이는 무탈하게 돌잔치를 치뤘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의 원인 규명은 제자리였다. 원인도 모르고 어떻게 재발을 방지한단 말인가. 답답한 걸 넘어 정부의 태도에 치가 떨렸다. 이제 우리는 배를 탈 수 없는 섬나라에 살게 되었구나 생각했다.


그 때까지 나는,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을 하고 돈이든 시간이든 결과물을 뜻있는 곳에 쓰자 생각하며 살아왔다. 전문성이나 어떤 경지를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 즈음 그렇게 앉아 있어서는 무엇도 바뀌지 않음을 깨달았다. 비록 아마추어일지라도 세상에 뛰어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장민승 작가의 팽목항 기록 '둘이서 보았던 눈' (Image from Topclass)


정의로울 수 있는 건 오직 '젊을 때뿐'


4월초 '공공성으로의 초대' 강의 때였다. 교수님은 칼 바르트 Karl Barth의 '예수 제자 = 마르크스 제자' 등식으로 강의를 열며 뼈 있는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 정의로울 수 있는건 오직 젊을 때뿐입니다. 여러분은 젊습니까? 젊지 않다면 이제 우리는 정직해져야 합니다."


강의는 국가를 향했다. 교수님은 자본주의 국가는 국민의 안전에 관심이 없다고 일침하셨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국가란 '지배계급위 경제적 이해를 관철시키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견제와 감시가 없다면 국가는 정의와 공익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고 하셨다. (크으 이 단호박이란 @,@)


그 때 다시 세월호가 생각났다. 내 정의롭지 못한 젊은 시절도 생각났다. 나는 예수의 제자도, 마르크스의 제자도 아니었다. 그저 나는 호기심을 쫓아 가능성의 세계로 향했던 회사원이었다. 조금은 별난 구석이 있었겠지만 결국 재테크, 연봉, 승진을 술안주로 삼았던 도시노동자에 불과했다. 영화 매트릭스를 봤을 때 이미 깨달았던 사실이었는데 그동안 눈감고 외면하며 시간만 흘려버린 셈이었다.


장민승 작가의 '보이스리스 Voiceless' (Image from Topclass)


젊어질 수 있기를, 못 다한 마음을 위해


나는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 다시 젊게 해주세요 무릎꿇고 빌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는 일. 그러다 묘수를 찾아냈다. 그건 젊음을 연장하는 마법이었다.


한동일 교수의 '라틴어 수업'에 로마인의 나이법에 대한 구절이 있다. 로마법은 젊은이(유베니스 iuvenis)를 만 20세에서 만 45세까지로 넓게 규정했다고 한다. 이는 전쟁에 동원될 수 있는 기준이기도 했다. 로마군이 정의를 위해 싸웠는가는 모르겠지만 싸우는 사람으로써 젊음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로마인이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특정한 주제나 이슈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못 다한 마음이 앙금처럼 남아있을 뿐이다. 그 마음이 어떤 등불같은 정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6년은 로마인으로 살아야겠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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