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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Aug 28. 2019

10년지기 정장의 마지막 조언

세계인도주의의날



모든 사건사고에는 메시지가 있다고 믿는다.



2019년 8월 19일


그 날은 세계 인도주의의 날이었다. 경희대와 함께 준비해온 작은 포럼이 열린 날이기도 했다.


행사가 끝나고 마지막 물품박스를 들고 일어나는 순간 메시지가 수신됐다. 정장 바지 가랑이 사이로 부우욱. 신기하게 그 소리는 꼭 책을 찢는 소리 같았다. 인생의 한 페이지가 뜯겨나간 느낌이랄까 ㅎ


2019 인도적지원 포럼, 시민청 바스락홀


특별한 녀석이었다. 직장인 대부분이 검정과 군청 사이를 오갈 때 과감하게 선택한 카키였다. 그 녀석은 여름의 신사였고, 선글라스처럼 나를 당당하게 만들었다. 두 번의 이직을 함께 한 10년 지기였다.


기분이 묘했다. 돌아보면 그 날은 내가 속한 단체가 개발협력에서 인도주의로 색깔을 뿜어내는 분기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짧은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개강을 앞둔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학계와 실무를 넘나드는 패널분들의 통쾌한 토론들



행사는 좋았다.


북한 이슈로 인도적지원을 귀에 걸었다 코에 걸었다할 때, 인도적 위기 최전선인 분쟁 국가들로 관점을 리셋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학생, 학계, 국내 NGO들이 인도적지원에 대한 관심과 준비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볼 수도 있어서 또한 좋았다.


그 중심에 거인 '도미닉 크라울리'가 있었다. 그 덕분에 예멘, 콩고민주, 파키스탄, 소말리아 등 분쟁 비용과 국제사회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인적 비용 Human Cost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강렬했던 것은 그가 속한 세계의 중심이었다.


도미닉 크라울리, 컨선 긴급지원 총괄디렉터


도미닉은 모든 질문에 한결 같이 "현장에 가야합니다 Go to the field"고 답했다. 인도적지원 커리어의 시작도, 변화의 방향도 모두 현장에 있다는 것이었다. 30년 베테랑 구호요원에겐 현장이 출발점이자 도달점인 셈이었다.


그 덕분에 2년전 더블린 본부 인덕션에서 배운 첫 수업이 떠올랐다. "(먼저) 인도주의자가 되세요 Be Humanitarian!" 아마도, 어쩌면, 결국엔 ... 커뮤니케이터인 나도 현장에 가야만 하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그것이 더는 괜한 예감이 아님을 깨달았다.


피터 크라이튼, 도미닉의 20년지기 트레이닝 파트너


10년지기 여름 정장은 온 몸을 던져 메시지를 전했다. 가랑이 찢어지지 않게 조심해라 .... 가 아니라, 곧 마주할 한계선을 뛰어넘을 준비를 시작하라는. 10년전 비즈니스 세계의 핏은 이제 버리고, 다시 새롭게 준비하라는 충심어린 조언을 전해주었다.


어느덧 만성 소화불량이 익숙해진 마흔의 아빠 활동가는 조금 무섭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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