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엉군 Sep 02. 2019

게이 친구 하나 없는 척박한 삶이여

마지막 직업, 인간 #10


8월과 함께 여름방학이 끝났다.


남들 쉬는 여름에 행사를 하느라 수명이 깎였지만 인생은 공평하다. 그 댓가로 대박 영드를 만났으니. 주인공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Sex Education.'



연예세포가 살아있었다면 동정남 오티스와 쿨녀 메이브의 관계에 집중했을텐데 내 시선은 중반부터 온통 오티스의 게이 친구 에릭으로 쏠렸다.


놀림 받는게 일상인 에릭은 그럼에도 늘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말하고 입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에릭은 온몸으로 생명 에너지를 표출했다. 16살 고교생들의 성고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회심의 에릭 Eric


돌아보니 한국에서 살아온 사십년의 삶은 퍽이나 척박했다. 중학교 시절까지는 그나마 발달장애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이 장애를 가졌었음은 서른이 넘어 깨달았지만) 그 외는 모두 성별이 정해진 남녀친구들뿐이었다. 이 얼마나 단조로운 삶인가.


일생 첫 게이 동료는 삼십 후반에 만났다. 처음 그가 내게 커밍아웃을 할 때 나는 엄청 당황했다.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순간 그의 파트너를 He라고 해야할지 She라고 지칭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같은 순간이다.



작년 드래그퀸 팬티 블리스 Panti Bliss 를 만났을 때, 게이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송두리째 날아갔다. 2015년 다큐 영화인 '아일랜드의 여왕 The Queen of Ireland' 속의 그녀는 색깔과 유머로 자신을 내던지며 모든 차별과 제약을 깨부셨다.


깜짝 게스트로 무대에 올라왔을 때는 더 벙벙했다. 그녀는 일반 남성들보다도 훨씬 거대했다. 영화에서 몇 년이 흐른 그녀의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더 선명해져 있었다. 그가 그녀의 인식을 획득하기까지 그 오랜 시간을 그렇게 버티며 싸워온 것이 대견했다.


Panti Bliss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를 추천한 김봉석 편집장은 한국에 나올 수 없는 드라마라고 평했다. 하지만 에릭에 푹 빠진 나는 한국에서 절대 만날 수 없는 친구를 만났다고 말하고 싶다.


나만 못 만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다섯살 딸아이는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10년지기 정장의 마지막 조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