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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Jun 30. 2020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나요?

주말농장


코로나19로 발이 꽁꽁 묶인 4월의 어느날, 덥썩 주말농장 계약을 했다. 이동제한 주말은 맞벌이 부부에게는 평화의 귀환이었지만, 한창 뛰어놀 꼬맹이에게는 감옥과 다름없었다. 우리 가족에겐 돌파구가 필요했다.



주말농장 두 곳을 알아봤다



A농장은 10평에 11만원이었고, B농장은 17만원이었다. A농장은 비료를 별도로 구매해야 했지만 걸어서 갈만한 위치였다. B농장은 비료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차로 10분 거리였다. 하지만 가족회의 결과, B농장으로 낙찰됐다. 원두막이 있었고 조금 걸으면 제빵소에 갈 수 있다는 이유로.


5월 5일 어린이날에 역사적인 파종식을 거행했다. 세 명 모두가 처음으로 모종을 심었다. 부모님이 흔쾌히 동행해주어 도시촌놈의 면을 살려주셨다. 양상추, 깻잎, 케일, 치커리, 샐러리, 고추, 방울토마토, 가지, 참외를 심었다. 흥이 오른 아버지는 땅의 1/3을 가만히 바라보시더니 상추, 아욱, 시금치 씨를 뿌리셨다. 기백이 느껴진 파종이었다.


6월 첫 주말, 우리는 수확 파티를 했다. 참외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대단한 성장을 했다. 특히 케일과 상추의 생명력은 눈부셨다. 삼겹살, 등심, 갈비살을 구웠다. 부탄 가스 덕분에 오랫만에 화력을 느꼈다. 아마도 이 날, 우리는 땅 위에 살아간다는 의미의 귀퉁이를 잡았을테다.



화분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겨우 두 달 가지고 농부의 마음까지 알 수는 없다. 다만 가벼운 내 삶을 돌아볼 수는 있었다. 상추가 내게 물었다. 너는 어디에 뿌리를 내렸어?


상추 따위가... 라고 하기엔 매서운 질문이었다. 남들이 기술, 지역, 작품, 언어, 사람 등 자신만의 특별한 무언가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 나는 정말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걸까?



글도 뿌리가 될 수 있을까



30분 이른 출근길은 내게 생각의 길을 깔아주었다. 어쩌면 지난 15년간 나는 '글'에 뿌리를 내렸던 것은 아닐까. 가끔 '사진'과 '그림'이라는 씨앗을 뿌리고 '여행'이라는 땅을 다지기도 했지만 결국 일을 통해 내린 뿌리는 글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덕분에 내 삶은 그만큼 가벼웠다. 나는 작가나 기자처럼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회사나 단체의 이름 뒤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었으니 고민도 책임도 그만큼 덜 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여기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모두가 비슷한 뿌리를 품고 있지 않은가 싶었다.


하지만 더는 가볍고 싶지 않다. 가벼운 뿌리는 그만하면 됐다. 좀더 아래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싶다. 상추보다 깊이.



이랬던 녀석들이


이렇게 되더니


이렇게 되었다!!!


땡큐 상추야, 땡큐 유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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