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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Aug 12. 2020

더 랍스터: 위장 부부냐, 동물 솔로냐?

근시와 연고


코로나19와 긴 장마로 발이 묶였던 여름 휴가에 기묘한 영화를 만났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랍스터 The Lobster> (2015)


장마를 압도할 블록버스터를 보고 싶었던 아내는 네이버 영화추천을 돌렸고, 우리는 '45일 안에 짝을 못 찾으면 동물이 된다'는 카피에 넘어갔다. 레오 까락스의 '홀리모터스'가 떠오르는 기괴하고 오싹한 세계였지만, 블랙유머를 장착한 주인공 덕분에 웃으며 완주할 수 있었던 멋진 이야기였다(장르가 무려 로맨스/SF).


워낙 훌륭한 작품이라 영화를 평하거나 해석하기보다는 몇 가지 깨달음을 나누고 싶어 기록한다. (스포일러 덩어리입니다. ㅠㅠ)



부부주식회사: 우정따윈 개나 줘 버려


아내에게 버림받은 주인공 데이비드(콜린 파렐)가 찾은 커플 메이킹 호텔에서 첫 관계를 형성한 이들은 웃프게도 남자들이었다. 45일 중 하루가 지난 이들에게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는데는 우정만한 안식처가 없었던 걸까? 어쩌면 전처를 잃은 남성들의 자연스러운 공통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건 데이비드가 처음으로 호감을 가진 여성도 여성그룹의 한 명이었다는 점. 그 안에서 편안하고, 그 안에서 돋보이는 게 미묘하다.


하지만 모두가 부부를 목표로 하는 이 곳에서 우정따위는 '사치'임이 밝혀진다. 데이비드의 친구는 공통점을 어필하며 데이비드의 호감녀를 가로챈다. 그리고 끝내 동물의 길을 선택한 여성그룹의 한 멤버는 그녀를 위로하듯 조롱하는 친구에게 통쾌한 스매싱을 날린다. 부부라는 인위적인 목표 속에서 우정이라는 자연스러운 관계는 질식한다. (이 면에서 결혼제도는 교육제도와 놀랍도록 닮았다.)




리더십: 규칙은 여성이 정한다


모든 부부 관계는 여성의 선택에 달렸다. 데이비드도 그 친구도 상대 여성에게 채택되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릭 여성은 매순간 남성을 테스트한다. 반면에 적극적으로 애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여성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녀를 거들떠 보지 않았다. 왜 남성은 일생의 중요한 결정을 여성에게 일임할까? 남성이 선택할 수 있는 결정이란 동물이 되거나 사랑을 거부하고 외톨이가 되는 길 밖에 없는걸까?


더 무시무시한 것은 호텔도 외톨이숲도 두 세계의 규칙을 결정하는 리더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다. 결혼의 패러다임도, 비혼의 패러다임도 그 정점에 여성이 군림하는 것이다. 남성 관객으로서 이 점은 호러에 가까웠다. 정말 호러는 아내는 이 포인트를 전혀 캐치하지 못했다는 점. 란티모스 감독은 과연 세계의 쓰디 쓴 단면을 냉철하게 통찰해내는 철학자인 듯 하다.




공통점: "그런데 언제부터 근시였어요?"


외톨이 생활을 선택한 데이비드가 외톨이 여성과 사랑에 빠진 뒤 진지하게 던진 명대사. 이 대사를 들었을 때 '아, 이 작품은 불멸이 되겠구나' 직감했다. 영화 속에 사랑에 빠지는 이들은 어떤 공통점을 발견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 동질감이란 우성인자보다는 열성인자에 가깝고 근시, 코피, 무자비함 등과 같이 단점에 가까운 특이점들이다. 그런 특이점들은 때론 그 사람을 도드라지게 보이는 개성으로 둔갑시켜 문의 손잡이로 작동한다.


재밌는 점은 데이비드나 친구나 자신의 단점이 커버되는 환경에서 고백한다는 점이다. 절름발이 친구는 수영장에서, 근시 데이비드는 숲에서. 허나 그것도 찰나. 작은 점에 가까운 어처구니 없는 최소 공통분모는 사랑은 피워낼진정 관계를 지탱하기엔 벅차다. 그렇다면 아이를 등판시킬 것인가? 자기애로 똘똘 뭉친 이들이 살아가는 긴 인생에서, 누군가는 위장을 하며 하루하루를 모면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동질감을 싱크로하기 위해 더 하향평준화해야 하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영화는 마지막에 묻는다. "그대는 등에 연고를 발라 줄 누군가를 위해 눈을 찌를 각오가 되어 있는가?"




그런데, 동물을 선택하면 안 되나요?


영화의 결말은 저마다의 마음 속에 있다. 블랙유머를 사랑한 데이비드가 어떤 선택을 했을지는 어느 정도 예상가능하지만, 더 중요한 건 우리 각자의 선택인 것 같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이프 말고 총으로 아내를 겨눈 남성도 있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외톨이는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준비한다. 솔로의 끝은 고독사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동물로 살아가면 안 되는 걸까?"란 반문도 자연스레 들었다. 하지만 인간의 세계에서, 도시의 세계에서 동물이란 자연의 존재라기 보다는 식자재로 소비될 뿐이다. 랍스터는 우리에게 그런 대표 동물이 아닌가.


홈페이지를 들어가면 친절하게도 우리가 어떤 동물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치밀한 란티모스!! 크윽


http://thelobster-movie.com/


'까마귀'를 선택한 분들~ 언젠가 꼭 만나요!!



PS. 그런데 왜 45일일까?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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