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엉군 Jul 23. 2020

꿈이 썸으로 말을 걸어올 때


돌아오는 길은 달랐지만 우리는 결국 무사히 돌아왔다. 긴 여정이 꿈의 윤곽으로 끝이 날 때 나는 우리 무리 중에 마음이 끌리는 이가 있음을 깨닫는다.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6시 30분. 더 잘까 눈을 감지만 바로 뜬다. 꿈의 결말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 보았던 '쓰리빌보드'의 결말처럼 관계가 발전하는 느낌이 좋았다.


6살 꼬맹이의 아빠지만 가끔 썸을 타는 꿈을 꾼다. 연애까지도 못가는... 깰 때쯤 '그건 썸이었구나' 겨우 알아차리는 꿈. 어설프고 소년스럽지만 그 꿈들은 내게 누군가에 대한 애틋함을, 생에 대한 설레임을 선물한다.


그녀들이 궁금하진 않다.


늘 다른 모습으로 낯설지만 내가 아는 이들과의 한두가지 공통점을 공유할 정도이다. 다만 나는 꿈의 힘을 믿는 편이라 꿈이 생생해질 무렵이면 내 삶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구나 귀기울일 뿐이다. 그녀들은 그러니까 메신저인 셈이다.


최근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일과 직장이다. 우습지만 결혼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회사다닐 수 있을까 묻는다. 결혼도 몇 차례의 연애 끝에 이르렀으니 어쩌면 직장도 몇 차례의 이직 끝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한다.


돌아보면, 지금 함께 살고 있는 그녀는 어쩌다보니 스며들듯 결혼에 이른 건 아니었다. 날을 정하고 러시안룰렛을 돌려 비장하게 나를 몰아세웠다. 형편없는 수준이었지만 나름의 각본과 연출이 있었다. 그리고 유한한 시간 안에서 결심했다.


20대 때 나를 앞으로 밀어준 것은 테니슨의 "어떤 운명이 오던  가장 슬픈  나는 느끼나니, 사랑을 하고 잃은 것은 그러지 않은 것보다 낫다" 시구절이었다. 사랑을 떠나 그것은 내 삶의 지침이 되어주었다. 30대는 네루다와 페소아의 시에서 힘을 얻었다. 하지만 테니슨 정도의 권위는 아니었다.


40대에 이르러 나는 박노해의 시구절을 계속 힐끗힐끗 훔쳐본다. "누가 내 인생에 물 타려 하는가" 그의 일갈이 내가 잊고 있던 삶의 유한성을, 그래서 위대한 인간의 삶을 재각인시켜준다. 꿈만 못한 내 삶을 질책한다.


겨우 썸으로 끝난 그 꿈이 점심시간까지도 내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무슨 일을 하건 그 장르가 소설과 드라마보다는 시에 가까울 수 있기를.


좀더 가볍고 유쾌할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쓰리빌보드: 정의를 지지하는 유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