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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Jul 14. 2020

쓰리빌보드: 정의를 지지하는 유서

윌러비 서장의 편지


죽음은 힘이 없다. 하지만 죽음은 종종 이용된다. 그래서 어떤 이의 죽음은 소모적인 논란을 키우고, 어떤 이의 죽음은 상처를 어루만진다.


죽음이라는 인생 일대의 사건을 품격 있는 제스처로 가져가는 이들의 모습을 기록해두고 싶다.   



(영화 '쓰리 빌보드'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 엄마가 있다. 딸이 강간을 당하고 죽은지 수 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범인을 못 잡은 한 맺힌 엄마다. 어느 날 그 엄마는 집과 마을을 오가는 길가에 방치된 세 개의 광고판에 광고를 올린다. 광고는 딸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 경찰에게.


한 리더가 있다. 여성의 사망 사고에 대해 수사했지만 증거도 목격자도 찾아내지 못한 경찰서 서장이다. 두 딸의 아빠이자 성실한 성품으로 마을에서도 존경받는 어른이다. 하지만 어느날 광고판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면서 전쟁같은 하루하루를 살게 된다.


마을의 저명한 인사는 모두 경찰서장 윌러비를 지지한다. 딸을 잃은 엄마 밀드레드는 세 개의 광고판에 기대어 어렵게 싸운다. 두 번째 달의 광고비에 쩔쩔 맬 무렵 경찰서장 윌러비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은 밀드레드 부인을 파렴치한으로 몰아간다.



윌러비는 죽기전에 세 통의 편지를 쓴다. 재산이나 후사를 정리하는 일반적인 유서와는 달리 윌러비의 편지는 각각의 마음을 담아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누군가에게는 깊은 사랑을 남기고, 누군가에게는 길을 보여주며, 또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기도를 전한다.


그 중 밀드레드 부인에게 전달된 마지막 편지를 기록해 둔다. 마지막 날에 이런 편지 한통 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생을 정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밀드레드 부인,


죽은 윌러비입니다.


먼저 살인범도 못 잡고 죽은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그 사건은 제게 큰 고통을 줬습니다. 제가 당신을 신경쓰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도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저 많이 신경썼거든요.


이런 경우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쉴틈없이 5년쯤 지나고 나면, 술집이나 감옥에서 어떤 남자가 그 사건을 자랑하는 걸 듣게 되는 겁니다.

모든게 완전히 어리석은 일로 끝나는 거죠.


저는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안젤라를 위해서도요.


밀드레드,


광고판은 정말 끝내주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체스에서 '장군' 받는 기분이었어요. 광고판은 제가 죽은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서 제가 '멍군'을 두었습니다. 다음달치 광고료를 내는 걸로 말이죠. 정말 재밌지 않나요? 그들이 나를 땅에 쳐박아두고 나면 당신은 다음 달 내내 스스로를 지키고 있어야 하잖아요.


아무튼, 내가 광고료   말하는  당신 몫이에요, 밀드레드 하하. 설마 그들이 당신을 죽이기야 하겠어요?


부디 행운을 빕니다. 다른 모든 일도 잘 풀리길 바라구요.


그 놈을 꼭 잡기 바래요. 내가 기도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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