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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Nov 08. 2020

주4일 프로젝트를 위하여

첫 걸음: 경제적 자유, FIRE족


올해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지난 4년간의 NGO 생활을 포함, 14년간의 사회생활을 정리하는 글을 시작한다. 주머니를 비우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글길을 만들어 가고 싶다.



회색지대를 선명하게 만든 2020년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었던 올해는 내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코로나19와 관계없이 변화하는 상황들도 있었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선택한 실험들도 있었다. 덕분에 회색지대에 놓여 있던 것들이 제 모습을 드러냈고, 나는 그것들에 대해 입장을 명확히 할 수 있었다.


그 중 조직개편은 아무리 애써도 덤덤해지기 어려운 이슈였다. 팀원과는 더 돈독해졌지만, 결국 사회생활의 민낯을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고, NGO라는 조직도 결국 생존과 성장, 그리고 관리라는 측면에서는 어쩔 수 없는 조직임을 여실히 느꼈다. 오히려 기업이 더 솔직하고 합리적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과정에서 또 활동을 통해 배운 건 있어서, 코로나19를 핑계로 대학원을 휴학하고 주말농장을 시작했다. 작년 '기후변화와 기아'라는 주제로 세계기아리포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농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이 모든 상황을 핑계로 그것에 한 걸음 더 들어갔다. 아내와 꼬맹이를 꼬셔서 뜨거운 여름을 삼겹살과 상추와 함께 지내고 이번 주말에는 가을무까지 수확했다. 텃밭은 내 세계를 한 뼘 넓혀주었다.


그 과정과 함께 재택근무 경험은 직장 생활에 대한 사고의 폭을 확장해 주었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었던 시기에는 주3일 재택근무를 했는데 출퇴근이 사라진 그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개인적으로 회사에 '가족'이란 말을 붙이는 걸 싫어해서 점심시간이나 공동생활을 최소화하고 있는데, 코로나19가 그 선을 선명하게 해주어서 좋았다. 불필요한 회사 일상이 생략되면서 업무효율성은 더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미니멀 중의 미니멀, 경제적 자유


일련의 실험과 사고는 좌충우돌 끝에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운이 좋게도 이 모든 것이 시작될 즈음에 <파이어족이 온다> (스콧리킨스, 2019, 지식노마드, 박은지 역)를 읽었었다. 당시에는 이 책이 이후 여정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올해를 돌아보니 지금 내 삶은 과거의 모든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FIRE(Finacially Independent Retire Ealy, 조기은퇴)족이 추구하는 '경제적 자유'로 향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파이어족'을 놓고 꽤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이어족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일정 금액의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다른 지점은 소득이 아닌 지출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삶의 형태에서 미니멀한 지점까지 줄였을 때 필요한 금액을 연으로 환산하고 그 것을 x30년하면 대략적인 은퇴 필요 자금이 나온다. 물론 아무리 줄여도 몇 억이다. 그럼에도 의미가 있었던 것은 우리 부부에게 시스템 탈출이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미니멀 지출을 함께 점검하도록 명령(?)했다는 부분이다.   


"살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으면서 한번쯤 그러한 상황을 받아들여 보라는 것이 저의 조언입니다. 경제적 자유는 자신을 절벽으로 밀어내는 것과 비슷합니다. 벼랑 끝에서 떨어지기 전에 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결코 뛰어내릴 수 없습니다."

- 로빈 (파이어족이 온다, p.152)


어쩌면 이는 40대에 접어들어서 인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달렸던 20대~30대 초반의 나는 '가능성의 세계'를 동경했다. 새로운 경험과 미개척지라면 무조건 뛰어들었었다. 30대에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가 '세상의 중심'으로 돌진하고 싶었고 내 커리어의 가장 뜨거운 시절을 보냈다. 30대 후반에 내게 없는 '신념의 조각'을 찾아 국제인도주의단체로 향했지만, 현재로서는 신념이 없는 이는 결코 그 조각을 찾지 못한다는 깨달음 정도다.

 

간혹 나는 PR 홍보라는 업의 특성상 지난 14년간 서커스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하곤 한다. 한 바탕의 서커스가 끝나고 관객이 모두 돌아간 무대에 홀로 앉아 텅빈 객석을 바라본다. 나는 이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싶다. 잘 못 살았나. 돌아본다. 매순간 최선을 다했고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했다. 위로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 세계에 노크를 한다. 다행히 대답이 돌아온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업 다운을 거쳐 모든 것을 내려 놓을 때 쯤 내면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니까 거침없이 살아.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다. 그 녀석은 나랑 같은 이름을 가진 녀석인데 내 그릇이 산산 조각날 때 쯤이면 불쑥 나타나 어떤 메시지를 전한다. 그 메시지는 간격으로 두고 3번 정도 반복되고 내가 마지막 메시지에 응답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다행히 인생에서 어떤 시그널을 느낀 시절이면 그 녀석이 잊지 않고 나타났고 나는 진지하게 응했다. 그리고 또 다시 그 녀석과 마주하고 있다.



생존을 위한 미니멀, 주4일


지금 내 모든 관심사는 '주4일'로 향하고 있다. 주4일 근무인지 노동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그 주4일간 무엇을 하는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과거라면 굿워크나 자아실현 등 여러가지 한정적인 기준들이 붙었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은 애초에 잘못된 조건이었음을.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은 주4일의 수입으로 이끌어가는 '주3일'에 있다.


금토일 주3일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직 없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버렸다. 결혼 10년차 6살 꼬맹이의 아빠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렴풋한 기억 속의 청년은 금요일 밤기차에 올랐고, 주말에 만화 작업을 했다. 무엇을 할 것인지는 시간을 돌려받고 생각해도 늦지 않다.

 

주4일 프로젝트를 쏴올렸어도 구체적인 방법론에는 이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김정운 교수의 말을 빌리고 싶다. "사회는 담론적이어야 하고 삶은 단언적이어야 한다." 단언하고 선언함으로써 내 삶이 출항할 수 있다면, 나는 그러고 싶다.


주4일은 현실적으로는 경제적 자유에서 출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시간적 자유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유'라는 공통분모를 계속 붙잡고 늘어지고 싶다. 현재로서는 경제적, 공간적, 직업적, 생존적, 관계적, 시간적 등등이 떠오른다. 자립을 넘어 자유에 이르고 싶다. 내가 진정 원하고 바라는 세계를, 일과 조직이 아닌 자유로운 관계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


주4일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영어 단어 'free'는 "친구"를 의미하는 게르만어에서 나왔다. 자유의 몸이 된다는 것은 친구를 사귈 수 있고, 약속을 지킬 수 있고, 동등한 사람들의 공동체 안에서 살 수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자유의 몸이 된 노예들이 시민이 되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 <부채 그 첫, 5000년> 데이비드 그레이버, 2011, 부글북스, 정면진 역,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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