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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Mar 15. 2021

시리아 내전 10년: 전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에만 몇 번의 한 숨을 내밷었는지 모릅니다. 3월, 1년 과업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달. 만들어야할 일은 산더미인데 혼자 레바논 인터뷰 스크립트를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번역은 열흘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계획에 없던 일이었는데, 기자 한 분이 시리아 내전 10주년 이슈에 관심을 가지면서 일은 시작됐습니다.


아일랜드 본부 동료들은 시리아 내전 10주년을 맞아 '10 years in tents'라는 인터뷰 시리즈를 기획 중이었습니다. 시리아인들이 많이 사는 터키, 레바논, 북부 시리아의 시리아인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기획이었죠. 분쟁과 이동제한 속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진행한 기획이었습니다. 시리아인들의 현실을 전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하지만 저는 나름의 계산을 마친 상황이었습니다. 미얀마 민주화 시위가 한창일 때라, 한국의 언론도 시민들도 큰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기획을 키우기보다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로서 5편의 인터뷰를 번역해 기자에게 전달만 하자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터키에 거주하는 시리아인 부부의 인터뷰를 번역하면서 뭔가 울컥했습니다. 시리아인들의 어려움이야 계속 알려줘 왔던 일인데 인터뷰 말미에서 미래의 '희망'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제 심장 한 모퉁이를 움켜 쥐었습니다.



우리 부부에겐 꿈이 없습니다. 다만 아이들의 미래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 라티프 (가명) -



다른 인터뷰에서 여성 시리아인은 남편이 죽은 후에는 자신도 죽은거나 다름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에도 한참 멍했습니다.


10년. 말이 10년이지 이 분들은 준비나 계획도 없이 떨어지는 포탄을 피해 거의 맨몸으로 집을 떠나 타지 생활을 해왔습니다. 텐트에서, 임대 시설에서, 친지의 집에서 살아왔습니다. 기약도 없고 미래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 10년을 채웠습니다. 죽음과 파괴의 충격 속에서 얼마나 숨 막혔을까요.


오늘 번역은 레바논에 거주하는 시리아인 부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8페이지를 훑으며 숨이 턱 막혔습니다. 한숨과 산책과 자책 속에 진도는 더뎠습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일을 벌리고 책임지는 이 기가 막힌 현실에 답답했습니다. 그러다 중간 부분에 아버지의 회상에서 그만 또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전쟁을 피해 이동하면서) 아들이 죽었습니다.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습니다. 아들이 죽었어. 내 아들이 죽었어... 제 인생이 텅비었습니다.

- 칼레드 (가명) -



또 한숨을 내뱉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한숨에는 자책을 함께 실었습니다. 어쩔 수 없지. 저 분의 말에 내 마음이 이렇게 움직이는데... 전해야지. 저 분들의 목소리를 전해야지. 생각하며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올해 초, 기획할 것도 만들어가야 할 것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인터뷰를 읽고 있으면 어떻게든 그 분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하는 것이 인도주의 단체에서 일하는 지금 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국내 단체에서 시리아 내전 10년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단체는 손에 꼽습니다. 월드비전이 캠페인을 런칭하며 이슈를 제기했고, (제가 일하는) 컨선월드와이드는 기획인터뷰를 소개했죠. 유엔난민기구와 국경없는의사회가 각자의 사명 속에서 차분히 지난 10년을 재조명하는 정도였습니다.


어쩌면 저 말고도 각 단체의 담당자들이 저와 비슷한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그 한 마디들은 과연 누구에게 전해질까요? 부디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쟁은 우리를 파괴했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안전하고, 아이들이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여러분이 도와주세요.

- 살마 (가명) -




시리아 내전 10년:

기획인터뷰 1. 터키 "아이들의 미래" 편



시리아 내전 10년 종식을 위한 청원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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