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가치
김중미 작가의 <곁에 있다는 것>을 읽는 시간 동안 내게 가장 소중한 동료 둘을 떠나보냈다. 그 중 한 명은 팀원이었다.
처음 인도주의단체에 합류했을 때, 대표에게 (인도주의와 개발협력 세계를) 비즈니스 세계와 대비해 '마이너 리그'라고 표현하고 크게 혼난 적이 있다. 적절한 표현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흘러도 초심자의 눈에 비쳤던 이 세계에 대한 위치 감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김중미 작가의 책을 읽으니, 그랬구나 이 곳은 '가장자리 세계'였구나 싶었다.
가장자리 세계라는 위치 감각은 단순히 우리가 국경 너머의 (최빈국이나 취약국이라는) 세계의 끝자락에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한다는 공간성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다. NGO에서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약자나 소수자를 위해 일한다는 사회적 거리감이 있는데, 한 걸음 더 나가 해외 극빈층을 위해 일한다는 건 위의 국내 사회적 우선순위를 가로질러야 하기 때문이다. "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도와야하나요?"라는 질문에 자기만의 답이 있는 사람들만이 가장자리 세계를 위한 일원으로 참여한다. 때문에 그 일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 소중하다.
그렇게 참여한 일원들은 정말 다채롭다. 누구는 시리아나 말라위를 돕고 싶은 마음으로, 누구는 애드보커시에 힘을 보태고 싶어서 합류한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관점이 한 곳을 함께 바라보며 서로에게 '곁'이 되어 질문과 대화를 이어갈 때 가장자리에서 무언가 빛이 난다. 마치 <곁에 있다는 것>의 주인공 지우의 발견처럼.
"사람들은 주변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잖아.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거지. 눈길의 가장자리가 더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듯이, 우리처럼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더 잘 보고 더 빛날 수 있잖아."
- 지우 (김중미. <곁에 있다는 것>. p.241)
김중미 작가는 '곁'을 이야기하기 위해 고3 소녀 지우, 강이, 여울이의 목소리를 빌린다. 하지만 단순히 가장자리 세계를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세계를 지키는 힘을 되살리기 위해 세 친구의 엄마들과 할머니들의 우정을 소환한다. 나아가 작가 개인적으로도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무대인 은강 마을을 이야기의 공간으로 빌려온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손을 잡아 다문화 가정을 비롯한 새로운 주민들에게 정다운 '곁'을 만들어간다.
그것을 운동이나 활동 무엇으로 부르던,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이 주고 받은 '대화'가 참 좋았다. 진솔한 대화는 좋은 질문을 이끌어내고, 저마다의 대칭점을 드러내고, 변화의 밑그림을 그리고, 필요한 행동을 작당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세계 저편(해외 극빈층)에서 대화를 촉진하는 만큼, 우리 자신이 이곳에서 밀도있는 대화를 하고 있는가 반문했다.
공공대학원 '공공성으로의 초대' 수업 때 김운호 교수님께서 기업의 자원이 '돈'이라면, NGO의 자원은 '대화'라고 말씀하셨었다. 생각해본 적도 없는 충격적인 사고 전환이었다. 이 구분은 이후 5년간 내가 두 세계를 바라보는 기준으로 작동해 왔다. 여전히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행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그 말의 무게는 더해짐을 느낀다.
조직이 성장할수록 현저히 줄어드는 것은 '대화'다. 그건 NGO나 스타트업을 떠나 작은 규모의 신생 조직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과정인 것 같다. 하지만 교수님 말씀처럼 '대화'가 NGO의 중요한 자원이라면 그 데미지는 NGO에게 더 클 것이다. 그리고 실제 그렇다. 이번에 떠나보낸 두 명의 동료 모두 초창기부터 우리와 함께 하며 부서와 업무를 떠나 많은 대화를 주고 받으며 단체의 중심을 선명하게 밝혀온 이들이기 때문이다.
가장자리 세계에서 작은 빛을 쏘아올리려면 '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중요하다. 그리고 '곁'에서 함께 '대화'하는 것은 핵심적이다. 하지만 진솔하고 힘 있는 대화를 밀고 나갈 수 있는 '곁' 사람들은 흔하지 않다. 아직 그것이 어느 정도 크기인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아마도 우리는 엄청난 '곁'을 잃은게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은 타인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마음의 질서를 유지한다. ... 요컨대 우리는 온전한 정신을 외부에서 조달한다.
- 조던 피터슨. <질서 너머>.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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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변진경 기자의 김중미 작가 인터뷰 기사. 이 기사를 읽고 책을 만나게 됐는데, 인터뷰 형식과 깊이에 완전히 반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