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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Aug 28. 2021

세상의 끝에서 배운 마음들

마음으로 일하는 법


국제인도주의단체에서 일한지 어느덧 5년이 다 되어 간다. 처음에 2년 해보고 발 담그고 빠지려 했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3년을 더 다니게 됐다. 


올 여름초, 친구 녀석과 저녁을 먹다가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그래도 여기에서 이 거 하나는 배운거 같아."

"뭔데?"

"마음으로 일하는 법"


술 한 모금도 안 마시고 튀어나온 말이라 민망했는데 녀석은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표정으로 뭔가 생각하다가 눈을 꿈뻑이며 말했다.


"이야~ 너 그런 걸 배웠어?"


당시에 마침 입사 초기에 함께 부딪치며 일하던 옆팀 팀장이 퇴사를 하던 찰나였다. 내게 NGO의 언어나 문법은 화성과 금성처럼 멀었는데, 그녀는 전화 통화에서 행사 준비까지 일상의 모든 면면에 NGO의 마음가짐이 몸에 배어 있는 동료였다. 당시에는 그런 것들이 비효율적이라며 비판했는데, 5년을 돌아보니 내가 크게 배운 것은 그것 하나가 아니었나 싶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비영리나 NGO의 세계에서 일할 때 너무 마음을 앞세우지 말라고. 이 곳도 조직이고 변화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효과성과 효율성도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런 것은 기업의 언어다. 나는 그런 것들은 이미 질리도록 배웠고 그것으로 숨쉬며 살아왔다. 하지만 5년이 지나 돌아보니 결국 중요한 건 '마음'이다. NGO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것. 미션이 태어나고, 힘들어도 비전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것. 그것은 결국 마음이다 싶다. 






나는 국제인도주의단체에서 일하는 모든 동료들은 '세상의 끝'에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 단체의 기준과 원칙으로 찾아가는 사람들이 다를 수 있겠지만, 그들은 모두 약자이고 취약계층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한국과 같은 안전하고 발전한 선진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처음 들어보거나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 매번 세계지도를 다시 찾아봐야 하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가장자리다. 


나는 그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그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합류했다. 세계의 끝까지 가보고 싶었고, 그곳에서 멋진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수년간 품고 있던 마음의 전부였다. 기회가 닿아 일원으로 합류했고 직접 가본 곳은 에티오피아뿐이었지만, 커뮤니케이션 업무상 모든 국가의 사업과 이야기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단체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 현재의 사건과 사업을 파악하기 위해, 중심으로 초기로 돌아가면 마치 세계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전혀 다른 관점에서 세계의 곳곳을 누빌 수 있었다. 






나날이 악화중인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으면 다시 10년전 시리아의 상황이 재연되는 것 같다. 어쩌면 더 할지도 모른다. 시리아나 로힝야족은 정부군이라는 명확한 대칭점이 있었으니 말이다. 아프간은 내부 세력만 3파전이 될지 그 이상이 될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언론 보도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아프간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 그리고 스스로 묻는다. 이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는 친구나 가족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어느 시인의 말처럼 아픈 그 곳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같은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 아프간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우리 단체로서는 할 수 있는, 해야만 할 일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겪어본 낯익은 피로감이 겹치는 것도 사실이다. 아프간은 십년 안에 이 사태를 벗어날 수 있을까? 도대체 20년전에 아프간을 찾아가고,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간을 위해 걱정하는 동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스스로를 중간 점검하기 좋은 타이밍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곳, 세상의 끝에서 배운 것들이 무엇인지를 한번 돌아보는 거다. '마음'이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그러다보면 그 마음들 사이에서 내가 놓친 무언가를 다시 주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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