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의 간식, 2021
삶이 지루하고 무미건조하다고 느낄 때면 일본드라마나 대만영화를 찾아보는 편이다. 재택근무 점심시간 중에 하나 둘 찾아보다가 간만에 괜찮은 일드를 만났다. 제목은 <사자의 간식>.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생의 끝자락에 머무는 호스피스 하우스 '사자의 집'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8부작 미니시리즈다.
주인공 '시즈쿠'는 직장생활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첫눈을 보기 어려울거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섬에 위치한 '사자의 집'을 찾는다. 바다가 펼쳐지는 풍경, 아늑한 응접실, 유쾌한 자매 요리사에 이어 집 모양의 우편함이 보인다. 호스트인 마돈나는 말한다.
"간식 리퀘스트 박스예요. 정기적으로 게스트 분들의 추억의 간식을 먹는 시간이 있는데 그 때 그 때 모집하고 있습니다. 내일 3시에 진행할 예정이니 관심 있으면 오세요."
드라마는 '오후 3시 간식 시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처음에 간식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달콤한 추억'으로 찾아온다. 게스트 만큼이나 다양한 세대와 지역의 간식이 등장한다. 초콜렛과 단팥이 교차하고, 도쿄 과자와 프랑스 빵이 넘나든다. 그 간식을 처음 만났을 때의 추억도 함께 공유한다.
하지만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식사가 힘겨운 게스트들에게 간식은 '살아있다는 온기'가 되어준다. 몸을 가누기 어려워 식사를 거르더라도 간식 시간은 챙긴다. 휠체어에 의지해서라도 모두가 있는 주방으로 향한다. 누군가의 가장 달콤했던 추억을 들으며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맛있게 먹는다. 달콤한 간식과 함께 수다를 떠는 오후 3시에 시한부 게스트들의 생의 기쁨은 절정에 이른다.
간식이 아무리 달콤해도 죽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누군가는 다시 만나자고 하고, 누군가는 마지막 한 마디조차 남기지 못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이 곳에서조차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래서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묻고 함께 생각해본다. 그렇게 누군가는 죽음을 파티로 만들기도 한다. 게스트를 떠나보내며 촛농처럼 떨어지던 마돈나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사람의 인생은 한 자루의 양초 같다고 생각해요. 양초는 스스로 불을 붙일 수도 없고 불을 끌 수도 없어요. 한 번 불이 붙으면 자연스러운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다 타서 사그라드는 걸 기다리는 수 밖에 없어요. 양초의 불은 꺼지는 순간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살아간다는 건 누군가의 빛이 되는 것. 자기 자신의 목숨을 깎아내며 다른 누군가의 빛이 되는 것.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밝혀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간식은 무엇일까?
음... 지금으로썬 시나몬롤이 먹고 싶을 것 같다. 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나몬 향으로 내 코를, 내 몸을 가득채우고 싶다. 시나몬롤을 처음으로 만난 건 20대 후반의 인도 뉴델리였다. 모퉁이를 잡고 사회에 첫발을 내딪었던 시절, 겨울휴가로 인도를 택했고 그곳에서 일년의 마지막날과 첫날을 보냈다. 그 시절의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게 시나몬롤은 언제나 그런 느낌이다.
호스피스는 언젠가 꼭 도전해보고 싶은 직업 중 하나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것을 가볍게 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거기에 달콤한 간식이 함께 곁들어진다면 좀더 즐겁고 유쾌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