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북돋다
8월 마지막 금요일, 본부에서 전 직원 대상으로 아프가니스탄 현재 상황을 공유하는 자리가 있었다. 모두가 탈레반이 돌아온 카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난감해했을 때, CEO가 말했다.
급여와 이동이 모두 제한적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감정적 어려움입니다. 여성 스탭들의 불안이 너무나 큽니다.
그의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CEO의 말에 진심 어린 걱정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프간에서 활동했고 현지 스탭들을 직접 만난 그였기에, 통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나 또한 CEO를 만났었기에, 그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저 마음을 어떻게 한국에 옮겨올 수 있을까?
세상의 끝에서 실무적으로 가장 많이 한 작업은 통번역이었다. 저 쪽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이 곳 한국 시민이나 후원자들이 알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동료들의 목소리나 보고서를 옮기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경험과 지식의 차이는 있더라도, 어려운 나라의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입장은 같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국제사회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이름, 사건, 개념들 때문에 곤혹스러웠고 그런 것에 꽤 신경을 썼다. 이를테면 Shelter를 단순히 쉘터라고 할지, 아니면 피난처나 임시거처로 번역할지 따위를 고민했다. 피난처라고 하면 쉽지만, 고향을 떠나 타지에 의탁하는 실향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잠시 머무르는 거처 정도로 표현하는 게 맞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럴 때는 시민사회의 활동들이 큰 참고가 됐다. 예를 들어, 여성계는 Gender Equality를 당시 한국 사회에 맞춰 성평등이나 양성평등으로 로컬라이즈하지 않고, '젠더 평등' 그대로 밀어부쳤다. 그 인내가 결국 오늘날 한국 사회를 더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조금은 힘이 났다. ㅎㅎ
내게는 '인도주의'가 그럴 가치가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됐다. 다만 인도주의는 개념적으로 정교화되기보다는 행동적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CEO 성명 번역에 더 에너지를 투입했다. 성명은 행동적인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단체만의 타협하지 않는 가치와 상황적 맥락에 대한 감수성이 함께 담겨있어 인도주의 정신을 온전히 드러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 성명은 2016년 시리아 알레포 긴급탈출 성명이었는데, 짧지만 어려웠다. 일단 CEO 캐릭터에 대한 감이 없었고 그 메시지가 누구를 향하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반면 2019년 르완다 제노사이드 25주기 성명은 단숨에 해치웠다. 몇 차례 만남을 통해 CEO를 이해하고 있었고, 한국에도 잘 알려진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무색무취한 것 같은 인도주의에 대한 인식도 차츰 선명해졌다. 절체절명의 재난 상황에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인도주의는 언제나 길이 있다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통번역의 대상이 CEO나 스탭이 아니라 현지 주민이 되면 좀더 복잡해진다. 우리 단체는 '수혜자 beneficiary'라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다. 모금 부서는 후원자 소통을 위해 불가피하게 사용하지만 본부는 '가장 household'이라는 표현을 가장 많이 쓰고, '프로그램 참여자 program participant' 가 그 뒤를 따른다. 그러다보니 그 분들의 인터뷰 내용을 번역할 때면 늘 고난이다. 통역가가 어떤 맥락을 상정하느냐에 따라 주인공들의 톤앤매너가 구걸이 될 수도 있고, 요청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개의 경험이 좋은 기준점이 되었다. 하나는 2017년 에티오피아 현장 방문이었다. 당시 현장에서 만난 여성 가장들의 눈빛과 걸음걸이도 좋은 재료였지만, 개인적으로 내 인식을 바꾼 것은 사업과 관계없는 현지 청년들과의 만남이었다. 아디스아바바 택시 드라이버와 식당에서 나눈 현지 청년들과의 대화는 이들이 나라에 대한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에티오피아를 아프리카의 큰 형으로 우러러 본다. ㅎ
다른 하나는 에볼라 바이러스 대응 사례였다. 언젠가 CEO의 단체 메일 내용이 좋아서 개인적으로 답장을 보냈더니 좀처럼 없는 개인사를 들려주었다. 책상 위 사진 속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였다. 근엄한 표정의 라이베리아(?) 여성은 2015년 에볼라 발병시 모두가 문을 걸어잠그고 숨죽여 있을 때, 직접 이웃집을 방문하며 예방법을 알렸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감염되어 사망했지만 그녀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CEO는 말했다. 그 몇 줄의 대화는 나를 에볼라 대응 사례조사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도 가족과 이웃을 위해 목숨을 걸고 존엄한 매장을 진행한 30명의 보건요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세상의 끝에 이르렀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땅을 밟은 것도, 모든 사람을 만난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막연한 호기심으로 그곳을 찾았다. 그리고 아무런 지식이 없는 내가 받은 첫인상은 안타까움과 연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책임이나 도덕으로 화답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좀더 공통적이고 역동적인 것을 찾고자 했다. 그것은 살아가는 공간은 달라도 동시대적으로 요청되는 그 무엇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었다.
작지만 울림이 있었던 만남들을 통해, 그곳을 어떤 눈으로 바라봐야하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세상의 끝에서 내게 보내온 그 마음은 '용기'였다. 전쟁과 기상이변이라는 인도적 위기 상황에서도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 고통을 줄이려는 마음. 코로나19나 에볼라로 외부의 도움을 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가족과 이웃을 돌보고 지키려는 마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지만 아이들과 후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주기 위해 가혹한 현실에 맞서는 마름. 그 용기있는 마음들이 기아, 빈곤, 전쟁, 질병에 맞서 우리를 인간으로 살아있게 해주었다.
생각해보면, 불공정과 모순 가득한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 용기가 너무나 절실하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끝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용기'를 한 스푼 넣어 통번역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동정과 연민 대신, 우정의 형용사와 신뢰의 부사를 동원해 힘껏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거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직접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매점매석이나 배워가지고는 쓸데가 없네."
화담이 다시 말을 이었다.
"물산의 흐름을 바로 잡는 것이 경제라 하였습니다."
"그건 장사꾼의 얘기. 도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네."
"그럼 뭐라고 합니까?"
"마음 장사를 해야지."
"마음 장사라구요?"
"제 마음을 들여다봐도 맺힌 곳이 있고 풀린 곳이 있다네. 자네는 마음 장사꾼이 되게. 그래서 용기가 나지 않는 땅에는 용기를 북돋아주고, 지혜가 필요한 땅에는 지혜를 주게."
이재운. <소설 토정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