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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Oct 06. 2021

농부의 마음

로컬을 소망하다


수요일에 비가 오면 마음이 편하다. 주말 농장에 매인 몸이라 주중에 한 번은 물을 주러가야 하는데, 비가 그 수고를 덜어주기 때문이다. 늘 '오늘은 맑음'을 기대했던 내가 어느덧 '한 때 소나기'를 기대하는 농부가 되어버렸다.


세상의 끝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대부분 난민이나 도시 빈민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농부와 유목민이 더 많다. 우리는 다만 언론을 통해 이들을 만날 수 없을 뿐이다. 그들은 구조적 모순 속에서도 성실하고 끈기있게 척박한 땅을 돌보며 가족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용감한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세상의 끝의 농업이 궁금했다. 기아가 식량 부족 때문인지 다른 원인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기아와 굶주림 관련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간결하고 힘 있었지만 20여년 전(1999년)에 쓰여진 책이라 이후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 그러다 월스트리트 기자들이 2009년에 쓴 <기아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를 만나고 비로소 중심에 접근할 수 있었다.


책은 2003년 에티오피아 기근에 주목했다. 녹색혁명 성공으로 역대 최대의 풍년을 기록한 에티오피아에서 왜 기근이 발생했을까? 작가는 농산물 선물 시장과 유통 인프라의 미비, 그리고 선진국의 식량 원조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힘껏 식량을 생산해도 제 가격에 제 때 거래되지 못한다면 그저 창고에서 썩어갈 뿐이다. 나아가, 국내 시스템을 갖춰도 해외 원조라는 명목으로 무상 식량이 국경을 넘어오면 농부를 비롯한 로컬 가치사슬 참여자들은 비용도 건지지 못하고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많은 문제가 있지만, 핵심은 '보조금'이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농부들은 변덕스러운 날씨의 최전선에서 일한다. 다만 흉년이 되었을 때, 누구는 정부 보조금으로 구제받고, 다른 누구는 지원 없이 굶어 죽는다. 흉년만큼이나 풍년도 저주스럽다. 농산물 가격이 떨어져 씨앗값과 인건비도 못 건질바에야 땅에 도로 묻어버리는 거다. 보조금은 해외 원조와 자유 무역이라는 명분으로 선진국 농부를 글로벌 기업농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저발전국에서 보조금은 시장 경제와 민영화 압력에 밀려 제 역할을 잃고 농부들을 외롭게 방치하게 만들었다. 농업 산업과 식량 시스템의 구조를 이해할수록 무력감이 커졌다.





그 즈음, 2019 세계기아리포트를 준비하며 기후변화에 맞서는 농부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농법은 강우량이 적어지거나 불규칙해지는 곳에서 어떻게든 농작물을 키워내는 접근이다. 땅이 수분과 영양을 잃지 않도록 돌보고, 적은 비로도 자랄 수 있는 씨앗을 개량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세계가 기후변화에 분노하며 발을 동동 거릴때, 말라위 등 최빈국에서 국제개발협력단체들이 소농과 함께 진행하는 작고 탄탄한 농업은 큰 울림을 주었다. 그 때부터 농부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농부의 마음을 안쪽 주머니에 찔러넣고는 잊고있을 무렵 코로나19가 발생했다. 주말과 야외활동이 송두리째 날아가면서 자연스레 동네 인근의 주말농장을 알아보았고, 작년 4월부터 작은 텃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쌈채소, 나물,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에서 시작해 가을무와 배추로 옮겨가고, 대파, 쪽파, 허브를 시도하고 말아먹기도 했다. 모종삽을 거쳐 전설의 아이템 호미를 쓰게 되었을 때에는 뒤늦게 조상들의 지혜와 K농기구의 경쟁력에 감탄하기도 했다. 육식이 줄진 않았지만 채식이 늘었다. 한창땐 매일 아침에 '똥주스(똥 잘 나오는 녹즙)'를 만들어 먹었다.ㅎ


주말농장의 가장 큰 기쁨은 모든 과정을 온전히 해냈다는 성취감이었다. 작황 여부를 떠나 파종에서 수확까지 혼자 해내는 경험은 정말 특별했다. (물론 아버지를 비롯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ㅎㅎ) 하나의 전문성을 요구받던 사무직이 처음으로 '분업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생각했다. 뜯고 뜯어도 다시 자라는 상추의 생명력에 감탄하며 '나도 이런 생명력을 되찾고 싶다' 생각했다. 땅을 만지고 흙을 부빌 때마다 그런 생각은 강해졌다. 그렇게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사이클을 겪으며 자연의 리듬을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주말농장을 하며 농사 관련 책을 찾아 읽었다. <북학의>를 읽으며 실학자의 삶의 지식에 감탄하고 마당 뒷편의 '고구마' 밭을 꿈꾸게 되었다. <월든>을 읽고 수렵을 포함한 자급 방정식을 그려보게 되었고 위시리스트에서 가축을 조용히 뺐다. <시골수업>을 읽으며 귀농이 아니라도 '귀촌'이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것과 다 준비해서 내려가기 말고 현지에서 배우고 일하는 방법도 있음을 깨달았다.


<반농반X로 살아가는 법>을 만났을 때 마음은 절정에 이르렀다. '반농반X'는 규모에 관계없이 생계의 절반은 땅에서 음식을 길러 먹고, 남은 절반은 자신의 천직을 통해 소득을 얻는 삶의 방식이다. 나같은 늦깍이 아마추어 농부에게는 정말 실용적인 접근이었다. 저자인 시오미 나오키는 꽤 멋진 말을 했다.


"농업과 X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농업을 통해 자연의 섭리와 지구의 리듬을 느끼고 감성을 연마하면 새로운 발상이 솟아나고 창조력이 강화된다. 또 그렇게 심화된 X는 농업을 다시 심화한다."

- 시오미 나오키, <반농반X로 살아가는 법>





지난 주에는 김포로 품앗이를 다녀왔다. 아는 분이 고구마를 캐야하는데 일손을 보탤 수 있냐고 해서 경험치 획득을 위해 참여했다. 땡볕에서 4시간여 낫질과 삽질을 오갈 때, 호스트 농부께서 솔깃한 제안을 주셨다. "내년에 고구마 땅 좀 내어줄까요? 5월에 파종하고 10월에 오면 돼요." 처음에는 정말 감사한 제안이라고 생각했는데... 아픈 허리를 잡고 이틀 지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힘든 것보다도 누군가의 땅에 매인다는 것이 깔끔한 느낌이 아니었다.


시오미 나오키는 반농반X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사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명은 "자신의 키워드(농업 + 2) x 내가 사는 (지역, 현장)"으로 찾을  있다고 했다. 키워드가 소프트웨어라면, 하드웨어로는 공간이 필요하다. 아무 공간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나아가 내가 살고 싶은  필요하다.


그런 곳을 어떻게 만나야 하나 생각하다가,  또한 만남이고 인연이라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겠다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일을 만나기 위해  사람   겪어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당일치기 국내 여행을 떠나야겠다 마음 먹었다. 여행을 통해 내가 살고 싶은  만나고,  곳에 사계절을 심고 가꿀  있다면 꽤나 즐거울  같다. 그나저나 얄궂다. 지구 반대편에 가서야 비로소 로컬을 향하게   마음이.



에티오피아, 컨선월드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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