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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Sep 18. 2021

시민의 마음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다


화요일 '시민정치와 인간'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엄청난 화두를 던져주셨다.


공화주의의 핵심은 '시민'입니다.
시민은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고
그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소박한  말이  텅빈 가슴에 날아와 박혀버리고 말았다. 여기에 "시민=자유인"이라고 교수님은 덧붙이셨다. 로부터 4, 시민이  안에서 계속 뻗어나가고 있다.





30대에 내 인생의 키워드는 '자유'였다. 당시 대기업에서 회장님을 지켜야했던 포지션은 자유가 더 간절한 대칭점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관련된 책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다. 자유의 개념에서 출발해 자유에 이르는 조건으로 뻗어갔다.


자유가 무엇이라 정의내리긴 어려웠지만 그 길에서 칼 폴라니 형님과 한나 아렌트 누님을 만났다. 폴라니 형님이 자본, 노동, 토지의 경제 요소 분리의 역사를 통해 산업경제 속에서 회사원인 나를 다시 바라보게 했다면, 아렌트 누님은 기억 공동체 속에서 자유의 지향점이 자신이 아닌 당신(you)을 향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폴라니 형님이 등 떠밀고, 아렌트 누님이 손을 내민 셈이다. (내 인생 책임져 ㅎㅎ)


그리고는 한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자유란 녀석을. 어느 순간에 나는 그 녀석이 안이 텅빈 녀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유는 목적이 아닌 하나의 통과 지점이었다. 정적이지 않고, 둘러싼 환경과 치고 받는 동적인 녀석이었다. 그 녀석은 도착역이 아닌 환승역 정도로 대하는 것이 적절했다. 다만 적절한 경제적, 신체적, 관계적, 기술적 조건들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내 관심사도 자연히 월든, 파이어족, 적정기술, 반농반X로 흘러갔다. (소박성 전쟁!!)





5년전 지금 단체에 지원할 때 내 자소서 제목은 '당신의 자립이, 나의 자유로'였다. 그것은 이론이 아닌 실제 경험에 기반했다. 아내가 결혼 후에 변호사로서 자리를 잡으며 위의 자유의 최소 조건을 하나하나 구축해 나가자 신기하게도 내 자유의 영토가 넓어졌다. 물론 꼬맹이와 가정을 더 돌보아야 했지만 절대적 조건은 한층 좋아졌다. 그래서 그 경험을 하나의 가설화 한 게 내 자소서였다.


하지만 세상의 끝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자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온통 생존과 자립에 관한 것들 뿐이었다. -1에서 0으로 끌어올리는 힘겨운 사투였다. 그것도 한정된 리소스로 인해 모두가 아닌 가망성이 있는 일부 선택된 대상에게만 한정된 지원책들이었다.


그러던 가운데 공공대학원에 진학했다. 누군가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한숨짓는 세상의 끝에서 큰 그림과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글로벌 거버넌스라는 틀에서 인간 개발, 선택권, 역량, 존엄한 삶, 회복탄력성 등 많은 개념과 접근들을 배웠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여전히 자립의 세계만을 채워나갈 뿐이었다.





목요일에 대학원 동기와 저녁을 먹었다. 대학원에 오기 전에 르완다에서 개발협력을 했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내년까지 준비해 다시 르완다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분명히 '돌아'간다고 했다 ㅎㅎ)


그는 지금 한국의 개발협력은 현지 주민들의 필요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건 유엔이나 국제NGO도 마찬가지라고. 어쩌면 후원국과 수혜국이라는 역학관계에서 NGO나 비영리의 방식으로는 영원히 제자리 걸음일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대안이 비즈니스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지만 적어도 현지에서 현지 친구들과 시작해야 한다는 확신은 생겼다고, 그는 말했다.


나는 그에게 '시민'을 선물했다. 르완다에서 무엇을 하던 르완다 시민의 눈으로 개발과 발전을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살짝 숟가락을 얹었다. 그리고 르완다 시민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이곳에서 한국 시민들이 듣고 함께 공명하면 좋겠다고 조미료를 쳤다.


어쩌면 그 친구도 나도 훗날 NGO의 세계를 떠나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게 되건, 시민이 무엇인지 알게 된 우리는 누군가의 자유를 가로막는 일을 하긴 어렵겠다 싶다. 다른 한편으로는 실질적인 자유를 증진시키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지 상상해본다. 이 편이 더 즐겁다. ㅎㅎ


모잠비크, 컨선월드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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