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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Apr 30. 2022

내부 거버넌스 구축, 이사장의 일


"E, 정말 오랜만이에요. 여전하네요 :)"


금방이라도 한바탕 비가 쏟아질 것 같은 금요일. 4년만에 만난 우리는 소나기처럼 거침없는 대화를 주고 받았다. 이사장으로 성장한 그녀는 내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S와는 10년전, PR 에이전시 동료로 만났다. 에이전시에 합류하기 전에 작가였던 그녀는 유해 보였지만 한번 몰입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서로 잠시 스쳤을 뿐 우정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우연한 재회는 4년전 어느 비공개 정보회의에서 였다. 나는 국제인도주의단체 관계자로 참석했고, 그녀는 행사를 주최한 국제인권단체의 이사장이었다. 그 때의 놀라움과 반가움이란 ㅎㅎ 우린 곧 다시 만날 것처럼 헤어졌지만 그로부터 다시 4년이 흘러 지난 주에야 재회했다.


근황 토크. 그녀는 10년간 에이전시에서 근무했다고 했다. 주요 분야는 공공정책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그 후 PR 석사 과정을 밟고 더는 일하지 않으려고 했는, 후원 단체의 활동에 참여하면서 어느 순간 이사장이 되었다고 했다. 그 사이에 스타트업과 박사 과정도 병행하고 있었다. 여전히 일 구름을 몰고 다니는 스타일이었다. ㅎㅎ



일하는 이사회를 만든


찐 토크는 그녀가 설계하고 만들어가고 있는 '워킹 이사회'. 실무자인 내게 이사회는 그저 어르신들의 네트워킹 회의체 정도로 인식되었다. 그 중에서도 NGO의 이사회는 모금을 1순위로 삼는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녀는 정반대 방향에서 이사회를 설계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이사회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략과 우선순위를 셋팅하는 합의기구였다.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리서치와 토론이 필요하다. 또한 그것들은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기록되고 시스템화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녀는 이사회 활동에 '문서화'를 중요 요소로 정착시키고자 했다.


문서의 수명은 2년이라는 이사 임기보다 길다. 때문에 미완의 과업과 작은 전진들을 다음 이사회에 전할 수 있다. 인권 옹호활동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낙태죄 폐지에도 66년이 걸렸다. 긴 싸움을 위해 다른 국가들의 사례, 한국 사회의 법감정 변화와 같은 정보들도 장기전에 걸맞는 준비가 필요한 셈이다. 그렇지 않으면 단기 프로파간다나 해외 전략의 번역 수준에 그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그녀는 그녀의 임기 이후의 이사회를 챙기고 있는 셈이었다.



내부 거버넌스 구축이 1순위


그래서 그녀는 내부 거버넌스 구축을 1순위로 삼았다. 국내외 주요 인권 문제에 대해 한국의 맥락 속에서 무엇을 어떤 경중으로 가져가야할지를 함께 논의하고 정하는 것이다. 각 사안별로 내부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면 자연히 사안별 핵심타겟, 메시지, 활동, 협력 파트너도 더 명료해질테다.


흥미로운 부분은 그 다음이었다. 그녀는 이사회가 작은 덩어리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위원회' 시스템을 도입했다. 굵직한 사안은 전원 합의를 하지만, 구체적인 사안들은 각 위원회별로 쪼개어 다루는 것이다. 그것은 빠르고 효율적이다. 또한 위원회는 한시적인 이사들을 계속 이어주는 네트워크로서도 기능한다.


다른 하나는 이사회를 지원하는 '직원'이었다. 이사들이 모두 비상근직이니 실무적으로 연속성을 부여할 수 있는 상근 스탭이 필요한 것이다. 리서치, 일정 조율, 회의체 운영만 생각해도 그 직원은 꽤나 바쁠테다.


그녀의 머릿 속에는 이 밖에도 많은 과업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 서 있었다. 덕분에 2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서로의 근황 토크에서 시작한 대화는 어느덧 내가 눈을 반짝이며 배우는 수업으로 바뀌어 있었다 ㅎㅎ


10여년전 주니어였던 우리는 각자의 방향성으로 커리어를 쌓았다. 그리고 비영리 세계에서 우연히 교차했다. 다음 번에는 어떤 모습으로 재회하게 될지 모르지만 작고 소중한 우정을 키워갈 수 있도록 힘껏 살아야겠다.



세계인권선언 포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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