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입시에서 떨어졌다. 게임 회사 퇴사 후 한 달간 JPT시험공부에 올인하고 가장 빠른 시험일정에 응시하여 JPT 610점을 받았다. 곧바로 대학원 전형에 응시하여 서류 전형과 제2외국어 전형에 통과했는데 면접에서 탈락한 것이다. 면접관 교수님 중 한 분께서 "대학교 졸업 후 7년 만에 다시 학교로 오겠다고요? 공부하기 어렵지 않겠어요?"라고 하신 말씀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설마 그것 때문에 나를 떨어뜨렸을까?'
나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대학졸업 후 지금까지 줄곧 시사영어모임을 운영하며 공부해 왔다고 피력했다. 하지만 면접관들의 결론을 내가 바꿀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취업전선으로 뛰어들었다. 대학원도 떨어졌는데 놀고 있을 수는 없었다. 구직사이트에서 낯익은 회사명이 보였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유명세가 있었던 패션브랜드 회사. 대학생들이 취직하고 싶어 하는 중소기업 1위로 선정된 회사였다. 그 회사에서 해외기획부 직원을 채용하고 있었다. 나는 그 기업에서 일하고 싶었다. 이미지도 좋았고 패션 회사이니 제품에 거부감도 없을 것 같았다. 면접을 보았고 바로 다음날 합격 통보를 받았다.
첫 출근 날. 나는 깜짝 놀랐다. 이 회사는 밖에서 보이는 이미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외부에 알려지기로는 트렌티하고 정갈하며 멋스럽고 젊은 느낌이었는데 사무실 건물 자체도 오래된 구식에다 페인트칠도 벗겨지고 깨끗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해외기획부의 업무 서류가 엉망진창이었다. 회사는 수입과 수출을 같이 하고 있었는데 무역서류들이 정리되지 않고 여기저기 쌓여있었고 일부 서류는 아예 분실되었다. 컴퓨터 파일도 정리되지 않은 채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실제로 업무를 하는 시간보다 필요한 자료를 찾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수인계를 해주는 직원도 없었다. 다른 부서로 옮겨간 전 해외기획부 부서장님을 찾아가도 '나도 잘 몰라.', '그 부서의 업무가 원래 그래, 정신이 없어.' 이런 말만 돌아왔다.
'이런 회사를 다녀야 하나?'
대학원에 합격하지 못하는 바람에 다시 직장생활을 하게 된 나는 이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회사를 알아봐야 하는지 고민되었다. 그런 와중에 해외기획부의 중화권 담당 직원이 그만두었고 그 자리에 나와 함께 면접했던 중국어 능통자가 채용되었다. 그 직원은 내가 면접을 볼 당시 잠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나와 동갑내기면서 성품이 좋은 사람 같이 느껴져서 나는 처음부터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다. 나만 채용되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 사람과 같이 일하게 된다니 나는 너무 기뻤고 이 험난한 회사생활을 헤쳐나가는데 큰 의지가 될 것 같았다. 나는 회사를 다녀보기로 결심했다.
해외기획부의 팀원은 계속 바뀌었다. 일본 담당 직원도 퇴사하여 새로운 직원으로 교체되었고 영어담당 직원은 나를 제외하고 한 명이 더 채용되었다. 내가 입사한 후 2~3개월 만에 나를 포함해 모두 새 직원이 채용된 것이다. 업무를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고 사무실 서류나 컴퓨터 파일에 대해 설명해 줄 사람도 없었지만 팀원들 간의 결속력이 매우 강했다. 4명 모두 여자였고 비슷한 나이였으며 서로 신뢰했고 힘들 일은 서로 공감하며 의지했다. 직원들 모두 일은 힘들지만 직원들과 이렇게 재미있게 회사생활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해외기획부의 사무실마저 우리 회사건물 중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있었다. 사무실에 가로수가 보이는 큰 창이 있어서 밖만 보아도 업무 스트레스가 금세 해소될 것 같았다. 나는 그런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서류와 파일 정리를 비롯해 업무의 체계를 잡아나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렇게 행복한 회사생활은 길게 가지 못했다. 어느 날 우리 부서는 회사 건물의 지하사무실로 옮기라는 지시를 받았다. 사실 지하에는 사무실이 없었고 정리되지 않은 창고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 창고를 청소한 후 책상과 의자, 사무집기들을 들여놓아 사무실로 만든 것이다. 그곳에는 창문도 없었다. 정말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창문도 없는 지하창고를 사무실로 쓰라니? 더욱더 화가 나는 일은 우리 해외기획부를 국내영업부 아래로 두겠다는 것이었다. 우리 부서에 부서장이 없으니 국내영업부의 부장님 총괄 아래 업무 지시를 받으라는 얘기였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국내영업부와 해외기획부는 업무 내용이 완전히 다를뿐더러 업무의 상호작용도 전혀 없었다. 국내영업부 부장님은 외국어는커녕 우리 부서의 업무에 대해서 전혀 아시는 바가 없었다. 나는 한 동안 부장님에게 해외기획부의 업무 내용을 "가르쳐"드려야 했다. 업무 시간의 낭비만 초래하는 비효율이 따로 없었다. 부장님은 우리 부서의 부서장 역할을 하기 위해서 매일 아침 회의를 여셨다. 회의는 우리 부서 직원들의 부장님에게 하는 보고만 있었을 뿐 부장님으로부터 그 어떤 유효한 업무 지시나 효율적인 업무 개선 방안도 얻지 못했다. 물론 국내영업부 직원분들과의 업무 협력이나 업무 교류가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두 부서는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서로 붙어 있었으나 돌아가지 않는 불편한 동침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미국 지역의 한 바이어가 우리 회사를 방문했다. 나는 그 바이어와의 회의를 위해 준비한 자료를 들고 사장실로 들어가서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실에는 바이어와 우리 회사 사장님 그리고 사장님의 아내인 부사장님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이어는 회의 도중 갑자기 해외기획부의 팀장이 누구인지 사장님께 물었다. 사장님은 주저 없이 나를 가리키며 내가 팀장이라고 했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사장님을 뚫어져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아무 보직 없이 대리이기만 했던 내가 갑자기 팀장이라고?'
'지금만 잠깐 팀장인 것인가, 아니면 지금부터 갑자기 팀장인 것인가?'
두 가지 경우 모두 어이없었다. 회사에 체계가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 없을 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갑자기 아무런 공식 절차 없이 해외기획부의 팀장이 되었다.
우리 회사는 핸드백과 구두 그리고 의류를 제조하여 국내와 해외에 판매하는 패션회사였다. 해외기획부에서는 매년 S/S(봄/가을)와 F/W(가을/겨울) 시즌 판매를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쁘레따뽀르떼(pret-a-porter) 전시회에 참가한다. 쁘레따뽀르떼 전시회는 파리에서 개최되지만 미국과 유럽 각지에서 바이어들이 오기 때문에 해외기획부에서는 영어권 담당자이면서 팀장인 내가 참가하기로 되었다.
전시회 참가를 위한 해외출장 준비를 하는 것은 꽤 바쁜 일정이었다. 전시회 날짜는 다가오는데 디자인실에서는 제품에 사용되는 가죽과 색상, 심지어 디자인 자체를 변경하는 일이 잦았고 그에 따라 나는 수출 단가를 조정하고 사진도 변경해야 했다. 프랑스에 있는 지사와 통화해서 우리 회사가 참가할 부스의 크기와 부스 안의 설치물 구조, 샘플의 레이아웃 등을 의논해야 했다. 출국을 하기 전날까지 샘플이 변경되어 늦은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 변경된 샘플을 수출 단가에 반영하고 샘플 실물을 파리로 가져갈 가방에 챙겨 담았다.
파리 드골 공항에는 저녁 9시쯤 도착했다. 바로 호텔로 가면 좋았겠지만 파리 지사에 가서 회의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지사에 도착하자 시간은 거의 11시가 다 되었다. 오랜 비행시간에다가 시차까지 있어서 같이 출장 간 일행 모두 피곤해 보였다. 파리 지사장님과 현지 영업직원들의 환대를 받은 후 회의가 이어졌다. 샘플 디자인과 가격 점검 및 내일 어떤 상품을 주력으로 할 것인지와 제품 설명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다음 날 전시회가 개최되었고 나와 프랑스 현지의 영업사원 한 명이 부스를 담당하기로 했다.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해외전시회에 여러 번 참석한 경험 때문인지 나는 별로 떨리지 않았다. 바이어들이 한 둘씩 우리 부스로 들어와 문의를 했고 나는 친절하게 응대했다. 바이어들이 맘껏 샘플들을 볼 수 있도록 시간을 충분히 주었고 나에게 물어보거나 필요한 경우에만 제품 설명과 가격을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쇼핑을 할 때 판매 직원이 내 옆에 붙어서 묻지도 않은 설명과 홍보를 계속할 경우 내가 겪었던 불편했던 경험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런 내 모습을 같이 출장을 온 디자인실 팀장이 어디선가 몰래 보고 나에게 세일즈를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전시회는 4일간 계속되었다. 전 날 우리 부스에 들렸던 바이어가 다음 날 또는 그 다음날 와서 주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첫날보다 전시회가 계속될수록 바이어의 방문 수가 많아졌고 방문하는 바이어의 대부분이 주문을 했다. 출장을 함께 온 부사장님과 디자인실 팀장은 파리 현지의 시장조사를 하다가도 수시로 내게 전화를 하여 부스의 상황을 확인했는데 주문량이 많다며 기뻐했다.
전시회가 끝났다.바이어들로부터 주문받은 주문 금액을 집계하자 부사장님과 지사장님, 디자인실 팀장과 프랑스 영업사원 모두 탄성을 질렀다. 역대 최고의 매출 규모라는 것이다. 모두들 기뻐했고 디자인실 팀장은 내가 세일즈를 잘해서 낸 결과라고 했다. 나는 내가 딱히 잘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제품이 훌륭해서 판매가 잘됐다고 생각했다. 파리에 와서 바깥 구경은 거의 못하고 공기도 좋지 않고 햇빛도 들지 않는 전시회 부스에서 하루 9시간 동안 4일간 일한 것이 힘들었지만 뿌듯하게 느껴졌다.
출장을 마치고 회사로 출근하자 사장님께서 나를 호출하셨다. 사장님께서 나만 따로 부르시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출장 보고를 원하신다고 생각하고 자료를 준비해 갔다. 사장님은 보고를 원하신다기보다 이번 출장의 수출실적을 크게 치하하셨다. 더구나 내가 출장 준비와 세일즈를 잘 한 덕분이라고까지 말씀하셨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회사에서 만나기 어려울뿐더러 무뚝뚝하고 칭찬은 거의 하지 않는 분이 나에게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다니. 체계 없는 회사에게 힘들게 일했지만 이렇게 인정으로 보상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