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한 과학>을 읽고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다.
상투적으로 쉽게 말하면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다.
이 말의 뜻은 내가 누구와 어울리는지를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보인다는 말이다.
자신의 가장 친한 사람 5명의 모습을 종합하면 그게 나를 보여준다는 말도 있다.
혹자는 자신의 대인관계를 돌아보며 강하게 부정할 것이고 혹자는 상당 부분 수긍할 것이다.
어쩌면 한사람의 관계는 단순히 그 사람의 사회성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 혹은 내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우정을 넘어 사랑이란 관계는 더욱 강력하다.
사랑은 때로는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타자의 존재의 이유로 완전히 반대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인생의 결정 뿐만 아니라 우리는 뇌의 과학적 메커니즘으로
누구를 사랑하느냐에 따라 생각의 방식마저 전환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마음을 교정한다. 한쪽의 마음이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포유동물인 동시에 뉴런의 존재라는 이중의 자격으로 물려받은 이 놀라운 유산을 우리는 변연계 교정이라고 부른다. 정의하자면 그것은 우리의 유인자가 어떤 변연계의 통로들을 활성화 시키고 뇌의 정밀한 기억 메커니즘이 그것들을 강화시킴에 따라 그로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정서가 부분적으로 개조되는 작용을 가리킨다. 현재의 우리와 미래의 우리는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는가에 의해 어느정도 좌우되는 것이다.
토마스 루이스 <사랑을 위한 과학 중>
사랑하면 닮는 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들려온 카더라같은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사랑하면 생각하는 방식이 닮는 것이다.
습관을 공유하고 일상을 공유하면서 관계에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물들어가는 것이다.
명제에서 역은 항상 성립하지는 않지만, 한번 반대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내가 닮고 싶은 사람과 함께하면 나자신이 변화하지 않을까?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 자신의 성장의 배양분이 되지 않을까?
사람들의 수준을 급으로 나눠서 만나라는 말로 오해될까봐 우려스럽다.
누구도 타인의 인생을 함부로 규정할 수 없다.
하지만 당장의 나의 인생에서 나의 성장에 유익이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구분 할 수 있다.
혼자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보이지 않던 답을 타인으로부터 너무 쉽게 얻을 때도 있다.
종종 스스로 나아가는 성장의 과정에서 벽에 부딪힌 느낌이 든다면, 내가 지향하는 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람과 조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우정을 넘어 사랑이라면 더욱 강력한 영감을 주리라 믿는다.
퇴근 후 누구와 함께하고 있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