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히 속이 보일때
남도 내속이 빤히 보이겠구나.
<참고 산다>는 말이 얼마나 무겁고 괴로운지 모른다. 그리고 이 말은 상대적으로 누군가를 공격하는 말이 되거나 비하하는 말이 되거나 내가 우위를 선점하는 말이 되기도 했다.
하루를 열심히 살고 나면 뭔가 허무함이 확 몰려올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남들은 자기 잇속 다 챙기고 사는 것 같고 나만 그렇지 못하다>는 굉장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또 나를 지배한다.
가끔, 생각많은 내가 가끔, 반짝일 때가 있는데, 그걸 꼭 적고 싶다.
최근에 깨달은 건 그동안 사람들에게 현타를 느꼈는데, 그 이유가 <속이 너무 보여서>였다. 내가 그만큼 연륜이 생겨서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나는 아직 철이 확실히 없다. 내 생각이 깊어진다면 그런 사람들을 품겠지만. 전혀 깊지 않다.
중요한 건 남의 속이 빤히 보이는만큼 남도 내 속이 남에게도 빤히 보임을 깨달았다. 이걸 깨닫는 순간, 몹시 부끄럽고 혼자 삼키던 억울한 감정이 싹 사라졌다. 눈앞의 모든걸 탓하다가 갑자기 뒷통수를 맞는 기분이다.
내가 힘들면 남도 힘들다.
내가 불편하면 남도 불편하다.
내가 마음에 거리를 두면 남도 마음에 거리를 둔다.
내가 어떤 동기를 가지고 남을 대하든지 남도 그걸 똑같이 느끼면서 나를 대한다. 배려도, 나를 위해 남을 배려하면 그 이기적인 동기를 남도 아는 것이다.
사람을 도구가 아니라, 존재로 보고 소중히 여겨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소중한만큼 남의 생각과 마음도 소중하다. 서두르고 다그치기보다 기다리고 인정해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억울할거 하나 없다. 억울함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다보면 억울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