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하고 치졸하게 살기로 결정했다(2022.10.26)

나의 비겁함을 인정한다.

by 소국

10월 26일에 브런치에 이런 제목을 저장시켜놓고, 발행을 시키지 않았다가 오늘에야 다시 꺼낸다.


부끄럽고 부끄럽고 부끄러운 하루를 매일매일 살아간다.


술을 좋아하시는 우리 박물관 선생님이 10일간의 휴가를 사용해서 유럽여행을 가신다. 10일인지 14일인지. 4명의 선생님들과 같이 여행을 가는데, 매일 술을 마셔야겠다고 신이 나셨다. 웃기고 하찮은 이 분은 매일 나더러 일 열심히 하지 말라고 난리다. 열심히 한들 누가 알아주냐고. 티도 안 난다고. 일은 갈아 넣는 게 아니다. 평가는 그렇게 나지 않는다. 사실 이 말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일 시작한 지 거의 1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는 이해한다. 평가는 다른 문제이다. 뼈를 갈아 넣어도 평가가 다를 수 있다는 걸 직시해야 했다. 그게 세상이다. 공공기관의 특성상 보고서나 행정업무, 평가제도가 많은데, 이해할 수 없는 논리와 구조가 많았고, 실무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데도 행정에 맞춰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실무 하는 사람들은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누구를 위한 행정인가. 공무직의 사람들을 뭐라 할 문제가 아니라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본다. 도대체 무얼 위한 시스템인지 모르겠다. 참.. 행정을 위한 행정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요즘 시국도 어지러운데 어디든 그렇지 않겠냐마는 기본적 시스템마저 부정할 수 없지만, 행정이라는 게 기가 찰 때가 있다.


트집을 잡는 사람이나 트집을 잡히는 사람이나 매한가지 똑같다.


하루 종일 일하는데 옆자리 선생님이 업무 얘기가 끝도 없었다. 받아치는 것도 어렵다. 내 마음이 어려운 건지. 내 몸이 어려운 건지. 머리가 아팠다. 선생님도 중요한 행사를 준비하셔야 해서 이 말 저말 하시는 건데, 참 나는 그 선생님이 얘기를 시작하시면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괴롭다. 괴롭다. 괴롭다. 괴롭다. 괴롭다. 는 표정으로 오전을 보내고, 산책을 도는데, 새로운 길로 갔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을 기어이 따라가다가 나도 모르게 인상이 구겨졌다. 내 몸뚱이 따라주지 않아 괴로웠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 좀 마시면서 가자니까 선생님이 싫다고 하셔서 괴로웠다. 괴로운 산책이 끝났는데, 신기하게 몸은 가벼워졌다.


운동 덕분인가 보다 했는데, 나를 부르시며 단체복에 대한 의견을 물으신다. 단체복의 색깔을 보자마자, 뜨악하고 그냥 대뜸 색깔이 너무 촌스럽다 했다. 보라색과 초록색. 이게 무슨 조합인가. 난색을 표하고 나는 이건 아닌 것 같다 말했더니 관장님의 의견이라고 하신다. 아.. 뭐 이미 결정된 거구나 싶었고, 한편으로는 이미 결정 난 거니 그냥 주절주절 하련다 싶어 주절주절 했더니. 나중에 직원들과 다 같이 커피타임을 할 때 내가 너무 솔직하게 말해서 담당자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마무리 짓느라 힘들었단다. 이게 뭔가. 하. 정말 난감하다. 필터링이 없어서 솔직한 의견이 좋기도 하겠지만, 한편 마음이 상할 수 있겠다. 공무직에 내가 적합하지 않은 이유가 이렇게 표현이 풍부한데, 그걸 표현할 수 없으니 갑갑할 노릇이다. 이 마저도 선생님들에 의해 알았다. 내가 튄다는 사실을. 그저 묻히는 게 이 직업에서는 살 길임에도 나는 오늘도 튀었다.


난감하고 괴로움의 연속이다. 일이 원래 그렇지.라고 나를 납득시키고 싶지 않았다. 술이나 먹으며 혼자 생각하길. 이제 곧 있으면 나에게도 이 박물관의 마지막 날이 올 텐데, 괴로운 구조 속에서 '나'라는 특성이 끝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11월을 온통 내 걱정만 하며 보낼 수 없는데 말이다. 내게는 가족이 있으니, 가족을 핑계 삼아 비겁하고 치졸하게 살아야 하나. 그저 하루하루. 모든 행정과 상황에 끄덕거리며 따르며 살아야 하나. 별 수 있나. 단지 단체복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모든 일의 행정처리, 이해되지 않는 관계문제들, 덮어주고 덮어주는 식의 구조. 난 이해되지 않는데 선임들은 이해를 한다. 시스템과 구조의 문제들을. 내가 이상한 걸까. 그들이 이상한 걸까. 알 수가 없다.


괴롭다. 괴롭다. 괴롭다. 괴롭다. 괴롭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돈 안 드는 나만의 사치, 글쓰기(2022.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