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밤(2022.11.1)
11월이다.
벌써 11월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른다. 11월이면 이제 나의 계약기간도 끝이 난다. 큐티책을 펼쳤더니 다니엘서가 시작된다. 읽자마자 드는 생각.. 나는 다니엘처럼 살 자신 없는데.. 그만한 믿음 없는데.. 오늘 같은 날이면 그냥 술이나 한잔 먹고 자고 싶다.
27살의 여직원인 선생님이 요즘 나처럼 마음이 싱숭생숭한가 보다. 정확한 내막은 알 길이 없으나, 그저 말의 뉘앙스 속에서 짐작하길 내 앞날이 불안하다는 내용인 듯했다. 그전부터 계속하던 말이 <정해진 행로가 있어서 그 길로만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뭔가 정해진 것이 없어서 미래가 더 막연하고 불안해요.> 같은 멘트를 많이 했었다. 어제 우연찮게 책 얘기를 하다가 이런저런 책 추천을 했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책꽂이를 보는데,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라는 책이 있었다. 자기 계발서, 에세이 등을 많이 보는 편이 아니나 이 책은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죽기 직전의 교수는 남은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며 읽었던 책이었다. 이 책은 마지막 책의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리고 이 책과 다른 책 <오두막>을 27살 선생님께 선물로 드렸다.
마지막 책의 구절은 바로 이것. <만약 당신이 인생을 올바른 방식으로 이끌어 간다면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운명이 해결해 줄 것이고 꿈이 당신을 찾아갈 것입니다.> 나는 운명을 믿지 않지만 그것을 하나님으로 바꾸면 아주 자연스럽다. 나도 27살 선생님 못지않게 계약기간이 끝난 이후에 대해 고민하고, 내가 버는 수입이 늘어나지 않고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늘어감에 대해 고민했다. 고민은 불안으로 이어졌고, 때마침 모든 뉴스에 나를 더 두렵게 만드는 소식만 가득했다.
사는 게 뭔지. 별것도 아닌 것에 이렇게나 목숨을 걸고 사는 것 같아 나 자신이 한심하고, 사무실에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8시간을 보내면서도 일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해서 정신이 아득해지길 반복했다. 사무실에는 선생님들의 한숨소리가 공기를 매우고, 우리들은 그저 말없이 각자 업무에 충실했다. 공무직의 비애를 몸으로 느끼면서도 당당하고 멋지게 사무실을 박차고 나오지 못하는 이 현실이 너무 슬플 뿐이다. 박차고 나오지는 못해도 맞는 말 딱딱하며 살면 속이라도 후련할 텐데 누구 하나 부담될까 맞는 말도 집어삼키는 판국이니 얹힌듯한 사무실 분위기가 전환이 되지 않는다.
산책길에 답답한 마음에 실장님께 전화를 했다. 뭐하시냐고. 어떻게 알고 <산책 중이겠네> 하신다. 옆에 막내 선생님도 같이 있다고 하니 반가운 기색이다. 식사도 안 하시고 정리 중이란다. 그놈의 정리는 퇴사 이후에도 계속된다. 신기할 노릇. 일만 하시냐고. 여행은 언제 가시냐 여쭤보니 <이제 가야지. 내년에 갈 거예요> 하신다. 우리 막내 선생님이 <실장님 해외 가셔야죠>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피렌체 가요> 하신다. 사무실의 직원들도 이번에 해외여행 간다고 설레발을 치는데, 우리 실장님도 다 계획이 있었다.
그렇게 실장님 앞날을 응원해놓고, 막상 피렌체 가신다니 뭔가 배신감이 들었다. 다 계획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사람 생각은 정말 알 수가 없다. 퇴사 직전에는 여행 가고 싶다고만 말하셨고, 우리가 자신을 위한 선물은 없는지 물었을 때에는 그런 거 없다는 듯 담담히 말하셔서 좀 슬프기까지 했다. 저런 말을 들으니 너무 슬프게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형편이 슬픈 처지는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보인 건가. 실장님 처지는 나보다 훨씬 나을 수 있는데 말이다.
11월의 억새인지 갈대인지 모를 산책길을 걸으며, 세월이 너무 속절없이 빨리 지나감을 느꼈다. 우리는 이유모를 불안과 두려움을 안으며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인데 그저 오늘 하루 힘닿는 대로 살았으면 그만 아닌가 싶었다.
기억하고 싶은 말.
우리가 자기를 믿으면 안돼요. 하나님을 신뢰하면 돼요. 부르신 분이 책임지실 거예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 김기석 목사-
실력과 능력 없음의 절망, 일을 위한 일을 만들어내는 구조, 평등을 지향하면서 뚜렷한 위계질서, 평가를 위한 보여주기 식 사업, 인재를 육성하거나 성장시키는 데는 일체 관심 없고 그저 자리를 메꾸기 위한 인재 채용, 불필요한 절차로 소모적인 업무처리 방식, 내가 손해보지 않을 선에서의 업무 해결, 구조개혁 대신 주먹구구식 땜빵, 보이지 않는 편 가르기, 성인지 개념도 없는 말과 행동, 공동체 의식은 1도 없는 조직문화, 배려를 포장한 위선, 자기가 무슨 말하는지도 모르고 하는 말과 행동들,
정부만 문제가 아니다. 썩어빠진 공무직도 문제다. 저게 과연 공무직만의 문제인가. 내 가정은,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뭘 줄 수 있을까. 뭐라도 줄 수 있는 어른이 된다면 다행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