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님의 빈자리(2022.10.24)
엄마 잃은 애들처럼 보였다고 한다.
우리 선임 선생님은, 장난기가 많아 보이시는데, 늘 근엄한 척하며 자리를 지키신다. 평소 늘 새벽 일찍 출근하시고 4시 퇴근하시는 분이다. 시를 즐겨 쓰시고, 영화나 미술도 좋아하신다. 디자인을 전공하신 분이라 뭔가 감각이 남다르시긴 하다.
눈치가 너무 빨라서 가끔은 날 좀 모른 척해줬으면 할 때가 있는데 그게 오늘이었다.
<여기는 엄마 잃은 아이들이야... 지혜 씨 마음이 많이 힘들겠어~ 단톡방 보니까 우는 이모티콘 하고...>
<… 그런데 칼 같은 실장님 그냥 나가더라고요>
내가 내 마음을 직설적으로 비추면, 누군가가 불편해질까 봐 함부로 감정표현을 적나라하게 하기가 어렵다. 사무실의 전체 분위기를 주도하고 싶은 마음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런 말들에서도 실장님과 내가 친밀한가 보다 생각하고 탐탁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어서, 말하나 행동거지 하나 조심스럽다.
나는 오늘도 출근을 하면서 실장님 자리를 묵묵히 봤다. 너무 휑하고, 허전하고, 사람 나가는 게 이렇게 쉽나 싶게 허무했다. 23년 근무라 근속휴가를 못써서 1달 쉬었다가 12월에 퇴사를 하신단다. 참. 그래도 자기에게 쉬게 해 준다니 다행이다 싶다.
오전 내내 그냥 묵묵히 일만 했다.
<선생님, 실장님이랑 사진 못 찍어서 아쉽겠네요> 라며 막내 직원이 말한다.
<사진 찍으면 너무 마지막 같잖아> 이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고, <그래서 실장님이 좋아하는 겨울이 오면 꼭 만나자고 할 거야> 이 말은 했다. 실장님 입장도 있는데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또 저런 말들이 잘못하면 집착하는 애처럼 보일까 순간 걱정했다. 미저리 같나 싶어서.
선생님들끼리는 오전에 실장님 빈자리에 대해 긴급회의를 하셨다. 그리고 오후에는 관장님과 긴급회의를 하셨다.
참...... 마음도 몸도 힘들어서 혼난 하루다. 사람이 마음을 주면 이렇게 어렵구나.. 마음을 주고 나니 거기에 매이는 기분이다. 마냥 좋아서 좋아했는데, 생각보다 그게 타격이 컸다. 경력단절이었던 여자애가 사회에 나와 생각보다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을 만나니 마음이 그대로 훅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어떠랴.
사람은 영적인 동물이라, 내가 느끼는 바를 상대도 똑같이 느낀다는 걸 살면 살수록 느낀다. 눈치 보며 배려하는 것보다 차라리 솔직하게 마음을 이야기하는 편이 낫고, 내가 배려하거나 마음을 다하는 만큼 남도 나에게 그렇게 대한다. 바보 아니다. 다들 안다. 다 느낀다. 그러니 성경말씀대로 사는 게 진리인 것 같긴 하다. 하나님만이 아니라 사람도 내가 어떤 마음인지 어느 정도 다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마음의 동기가 참 중요하다. 그게 곧 말이 되고 행동이 되니. 오늘도 그저 나는 악한 마음과 생각을 품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이고, 순간에 치우쳐 말과 행동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게 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