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심이 폭력이 될까봐(2022.10.21)

속도조절 못하면 관계도 어긋나기 마련이니.

by 소국

감정을 조절한다는 게 커서도 참 어렵다.


실장님이 금요일까지 일하고 관두게 되었다. 사람이 관둔다는 게 참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싶다. 23년 재단에서 근무하셨는데, 이 박물관에 온 지 딱 1년 만에 관두신다. 쉽지 않은 결정임에도 담담해 보이셨다.


목요일부터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참. 실장님에 대한 실수 덕분에 마음이 한결 더 무거워졌다. 그분은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데 내가 눈도 못 마주치는 것이었다. 이미 마음이 무거워진 상태로 실장님을 대하니 실장님도 난감했을 것이다. 목요일 퇴근 후에 나는 바로 실장님께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과 선물을 사러 아웃렛으로 향했다. 아웃렛에 가보니, 목도리가 아직 출시 전이었다. 겨울을 좋아한다는 실장님 말에, 목도리를 꼭 선물로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목도리가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이다.


할 수 없이 편지지를 사러 문고에 갔다가 다이어리가 눈에 띄어서 다이어리를 집어 들었다. 2023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골랐는데, 좋아하실지 모르겠다.


금요일 오전 7시 30분쯤 보통은 이쯤에 내가 제일 먼저 사무실 출근한다. 그런데 실장님이 6시 57분을 찍은 것이다.

내가 너무 놀래서 <실장님 마지막 날 왜 이렇게 일찍 출근하세요?>했다. 실장님도 머쓱하신지 웃고 말았다. 커피를 갈아 내리려 했는데, 막내 여직원과 나를 데리고 산책을 가자 하신다. 산책을 돌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실장님 몇 번이고 넘어지실 뻔했다. 이번 일주일은 살인적인 스케줄이긴 했다. 실장님이 말씀하지 않아도 아마도 정말 몸이 힘드셨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재미 삼아하던 얘기 중 말이 나와서 생일 얘기가 나왔는데, 생일이 2월 15일이란다. 나도 모르게 <실장님! 우리 남편 생일이랑 똑같아요! 소름!>이랬다. 전부터 이상하게 우리 남편이랑 오버랩되는 게 많아서 남편이랑 비슷하다. 엄청 얘기를 했던 터였다. 그런데 마침 생일마저 같으니 정말 나는 기절할 노릇이었던 것이다.


실장님이랑 산책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와서 각자 할 일들을 했다. 실장님은 마지막 인수인계를 관장님과 다른 학예사 선생님과 하셨다. 나는 12시쯤 퇴근을 할 계획이었는데, 실장님이 11시 50분이 되어도 관장실에서 나오지 않아 마음을 졸였다. 그런데 칼 같은 실장님은 나를 생각하신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55분쯤 나오셨다. 그리고는 술과 술잔을 선물로 주셨다. 전 직원들에게 주려고 샀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은 <우리 이제 볼일은 없겠지? 우리 하선생님 지금처럼 즐겁게 일해요. 지금처럼> 한다. 나는 진짜 마지막인 것 같아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그리고는 <제가 전화하면 받아주실 거예요?>한 것 같다. 대답은 <안 받을 수도 있고>하면서 웃으셨는데, 진짜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 같다.


시간 관계상 나는 빨리 가야 했기 때문에 더 긴말을 못했는데, 맨 정신에 안아주기도 너무 어려웠다. 고맙고 미안해서. 회사 직원들 중에 아랫사람을 이렇게 존대하며 대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어서 그런지 꽤나 정이 들었는데, 너무 슬펐다. 내가 너무 큰 슬픔을 다 표현해버리면, 실장님도 너무 힘들까 봐 참았다. 특히 면전 앞에서는. 계속 연락하고 싶은 마음도 아무래도 참게 될 것 같다. 내 관심이 어느 순간 정말 폭력처럼 느껴질까 봐, 모른척하고, 오롯이 그분이 이 시간과 이 과정을 소화할 시간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이미 몇 차례 감정이 폭발해서 슬픔을 표현했지만, 이제는 좀 기다렸다가 실장님이 좋아하는 겨울이 오면 전화를 꼭 드리고 싶다. 잘 지내시냐고. 마음은 이제 편안하시냐고.


그리고 정말 괜찮으시다면 꼭 한번 뵙고 싶다고 얘기하고 싶다. 나의 관심이 부담스럽지 않게 묵묵히 응원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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