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님을 다시 만났다(2023.2.9)
실장님이 내 앞에서 울었다.
문득 실장님이 보고 싶었다. 사회적으로 관계를 어떻게 맺는 건지 잘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눈에 이 사람이 좋은 사람 같으면 그냥 나는 기꺼이 연락한다. 일하는 동안 실장님의 유머, 업무태도, 행동방식 등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존경했다. 그러나 나는 일개 계약직이고, 실장님은 지위가 있다 보니 마음껏 다가가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늘 내가 먼저 손 내민다. 실장님이야 아쉬울 게 없으니 내가 아쉬워서 손 내민다.
실장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선뜻 시간을 내주셨다. 나는 그 시간 내는 게 어려우리라 짐작은 했지만, 정말 그렇게 바쁜 줄은 몰랐다.(식사를 하려고 마주 앉았더니 실장님 눈이 빨갛게 충혈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현장답사 차 이천에 가셨다가 부랴부랴 사무실 복귀 전 나를 만나주신 것이다.)
실장님과 나눈 대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실장님은 퇴사 이후의 상황을 천천히 맥락 있게 말씀해 주셨다. 나와의 갈등, 가족과의 갈등, 현재 옮긴 연구소와의 갈등 등. 11월에는 실감이 안 났고, 12월에는 조금씩 느껴지고 1월이 되어서는 갈등이 증폭되고 2월이 되어서야 진정이 되었다고.
실장님이 하시는 일은 옛날 건축물등을 연구한다. 사실 지위나 하시는 일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실장님이라는 존재가 좋아서 관계를 맺다 보니 맨날 들어도 까먹는다. 그런데 이 분이 생각보다 꽤나 고학력에 연구자이신가 보다. 그런데 더 대박은 부모님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나 보다. 그래서 퇴사 후 첫 설을 맞이해 부모님 댁에 갔는데 설 전날 올라왔다고 하셨다. 뭔 일이 있으셨는지.
<엄마가 또 내가 그런 일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고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구정 전에 올라와 버렸지.. 그런데 마음이 좋지 않아서 편지를 썼지... 워드로 2장 나오대... 그런데 손 편지로 옮겨 적으니까 5장... 힘들더라... 편지를 부쳤는데.. 이때쯤이면 엄마가 편지를 받았을 텐데.. 왜 연락이 없지?(웃음) 그랬는데 나중에 연락이 오더라고... 편지지가 틈에 껴있어서 나중에야 봤다고... 그리고 우셨대...>
<뭐라고 적으셨는데요?>
<20대 때부터 무슨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일했는지... 그리고 마지막은 내가 엄마처럼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는데, 좋은 딸은 되고 싶다고...>
그러면서 우셨다. 실장님도.
같이 못 울어드려 미안하다. 대신 <와 실장님 나 또 반했네>라고 실성한 듯 말했다. <멋지다 실장님...>이런 미친 소리나 해버렸다. 그러면서 또 미친 소리를 했다. 내 자식이 실장님처럼 컸으면 좋겠다고... 어쩌자고 이런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걸까? 실장님과 나의 사이가 그런 사이인가?
<그 편지를 읽고 네가 날 이해해 줄 수 없겠니?라고 엄마가 그러시더라고... 우리 엄마가 이런 말할 사람이 아닌데...>
<아.. 약해지신건가?>
실장님은 엄마의 말에 내가 못된 짓 했구나 싶다고 하셨다. 자신이 얼마나 별 볼 일 없는 사람인지를 깨달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도리어 실장님의 이런 모습을 보며 참 좋은 사람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어른은 이런 게 어른이지라고 여기며, 내 자식이 실장님처럼만 자랐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대화 중에 실장님과 얘기를 하면서, <100% 착한 사람이 있을까?>라고 물으셨다.
<100% 착한 사람은 없죠. 단지 그때그때 선택을 할 뿐이죠.>라고 답했다.
바울도 자기 안에 성령의 법과 육신의 법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생각났고, 나는 실제로 살면서 늘 내 안에 선과 악이 싸우는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늘 마주하는 상황들에 두렵지만, 바른 생각과 선택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되는 것 같다. 뭐가 옳은지 그른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멀리하게 해달라고.
실장님을 만나서 좋았다. 17만 원짜리 갈비를 사주시는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너무 비싼 걸 얻어먹어서 다음번에는 내가 꼭 사야겠다는 말 같지도 않은 약속을 또 했다. 그분을 100% 이해할 수는 없지만, 실장님은 본인이 대나무 같은 성격이라 본인이 힘들다는 걸 본인이 모르는 것 같았다. 혼자 실장님과의 대화를 곱씹으며 생각하길, 아마 실장님 부모님은 그런 딸을 잘 알기에 걱정스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셨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저 실장님이 잘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