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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국 Mar 17. 2023

<퍼스트 리폼드>: 이해하지 말고 느껴야 하는 영화

극단적이지만 어쩐지 시원한 영화(23.3.16)

에단호크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그냥 그 배우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느낌이 좋다. 에단호크의 영화 몇 편을 보다가 <퍼스트 리폼드>까지 왔다. 이전에 봤던 영화는 <내 사랑>. 에단호크가 작품을 정말 잘 고른다고 생각한다. 두 작품 다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들이다.


교회를 다니는 나는 <퍼스트 리폼드>에 나오는 성경 말씀이 익숙했다. 적절한 타이밍에 상대에게 건네는 성경말씀들이 나에게는 너무 익숙하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툴러 목사가 말하는 성경구절이나 혼자 인생과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는 대목들에 대한 이해가 빨랐다. 그런데 이 영화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는 것이 아니다. 비기독교인들이 볼 때는 그저 미친 목사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런데 미친 목사가 하는 생각과 행동들이 예사롭지 않아서 눈여겨보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인생에 대한 회의와 모순을 다 느끼지 않나? 모순을 보고 회의감이 꽤 지속되면 환멸까지 가게 되는 것 같다.


툴러 목사의 강박적인 행동들, 기어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어 검열하듯 일기를 쓰는 행동.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찢어버리는 행동. 지나치게 본인의 말과 행동에 대해 고찰 아니면 검열하는 듯 보였다. 아무도 모르게 술을 한잔씩 하며 자신과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꼭 나 같아서 흠칫하기도 했다. 사회적 역할이 있으니, 본분에는 충실하지만 내면의 괴로움을 일기로 털어놓는다 한들 털어지지 않는다. 그저 괴로울 뿐.


툴러 목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난 생각한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제자였듯이. 결과는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팔았고, 툴러목사님은 자신과 모두를 파괴하려다가 내담자였던 메리와 사랑에 빠진다. 아슬아슬한 툴러 목사의 행보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불안인지. 두려움인지. 경멸인지. 뭔지 모를 긴장이 가득한 일상을 지속하는 목사님에게는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그냥 마음이 편안할 무언가가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가끔 착각한다.


대단한 무언가가 우리를 바꿀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의 삶의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계획이든 생각이든 결심이든 별거 아니다. 사실. 짧게나마 살아보니 나의 경우는 극단적인 것보다 작은 것에서 삶의 경이로움과 변화를 느끼게 한다. 살만하다고.


요즘 나는 내 신앙에 대해서도 인생에 대해서도 묵상하기를, 일상이 축복이고 기적이다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루를 돌아보면 얼마나 수많은 일들을 겪는지 모른다. 돌아보면 후회로 얼룩진 일상도 나의 일부임을 이제는 받아들이려 한다. 그게 인생이고, 좋은 것만 나의 것이 아니라 나쁜 것, 지우고 싶은 것도 나의 것이다. 나라는 존재의 어리숙함과 부족함과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들이 다 나다. 변화를 하려는 노력보다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노력이 나에게는 필요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작고, 나는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은 아주 작은 선택이다.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대신 남과 나를 해치지 않을 쪽으로 선택하자.> 이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나타나는 모양새가 우스울지라도 기본 생각은 그렇다. 가룟유다나 툴러 목사가 예수님의 진정한 가르침을 몰랐을까? 난 알았다고 생각한다. 한 끗 차이가 참사를 일으킬 뿐이다. 한 끗. 나 또한 언제고 어떻게 바뀔지 모를 일.


<퍼스트 리폼드>를 통해 결국 생각하는 건 지리멸렬한 일상 속의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순이 가득한 세상에서, 언제나 하나님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것처럼 무기력한 모습의 신처럼 느껴질 때에도 하나님은 존재하심을 오히려 영화를 통해 깨닫는다.(해석은 자유니까.) 성도의 기도와 고뇌를 하나님이 모르실까?별시덥잖은 성도의 삶이 하나님 입장에서는 가장 귀할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도 교회에 앉아 거룩하게 기도하고 고뇌하는 그 순간이 신앙이 아니라 지리멸렬한 삶을 살아가는 그 순간이 바로 신앙인 걸 깨닫는다. 기적이 아니라 섭리를 가치 있게 생각하고 걸어갈 거다. 그래서 생각이든 선택이든 마음이든 결국 그 모든 것, 나의 시작과 끝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거고 믿고 싶고 믿는다. 아무런 열매가 없더라도 내 삶이 가치 있는 이유가 이런 생각과 믿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지리멸렬한 삶이라도 일단 살고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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