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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국 Dec 10. 2023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형체를 알 수 없는 슬픔

슬픔으로 내 안의 두려움이 위로를 받았다._23.12.9

소설을 다 읽고, 꼭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오늘 학부모 모임이 있었다. 단순히 만나 노는 모임이었는데, 나는 사실 하루키 소설의 여운이 며칠째 가시지 않아 계속 머릿속에서 이걸 나누고 싶은 대상을 찾고 있었다. 아이들의 중요 학교 행사가 끝나고, 스케이트를 타자고 모여서 토요일 한적하게 만나 노는 모임이었지만, 어쩐지 나는 마음이 딴 데 있었다.


하루키의 소설은 나에게 첫 번째이다. 그런데 이 사람의 문체는 나를 휘어잡았다.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에 나도 똑같이 들어갔다가 나온 느낌이었다. 책에 첫 페이지부터 셀 수 없이 가장 많이 나오는 말. <그냥 원하면 돼> 방법은 없지만 그냥 원하면 된다. 그리고 믿으면 된다.


그냥 원하면 돼. 하지만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그 사이 많은 것을 버려야 할지도 몰라. 너에게 소중한 것을. 그래도 포기하지 마. 아무리 오래 시간이 걸려도. 도시가 사라질 일은 없으니까.


주인공 <나>와 상대 여자친구 <너>의 핵심 대화주제이다. 가상의 도시가 만들어진 배경도 결국 <원함>에 있었다. 그 도시에 들어가는 방법은 오직 하나 그냥 원하면 되지만, 그 원함이라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거.


그러면 실제 주인공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확신할 수 없는 매일을 무한히 반복해 가며 살며, 슬퍼하며, 고통하며, 고뇌하며 알아냈다. 사랑했던 소녀를 이유도 모른 채 헤어지고, 슬픔을 감내해 가며 반복된 생활을 했다. 슬픔은 일상에 치명타를 안겼지만, 나의 슬픔과는 무관하게 일상은 지속되기에 살아냈다. 직장도 옮겨가며 무언가에 끌리듯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고야스 씨를 만나고, 옐로 서브마린 소년을 만났다. 그들 또한 또 다른 아픔이 있지만 본인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간다. 여기에 카페 여주인도 나타난다. 소설의 현실에 사는 유일한 사람이겠다. 그런데 이 사람조차 사연이 있다.


나는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제각기 파헤쳐 놓고, 그 안에서 이야기가 펼쳐질 때 마음이 아팠다. 뭐라고 형언할 수는 없지만 슬픔의 깊이가 있다면 거의 구덩이를 파서 저 밑바닥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 각자의 이야기는 서로 종류가 다르지만, 슬픔은 같았고, 그로 인한 결과로 고립이 찾아옴도 같았다.


주인공 나의 슬픔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한 슬픔이고, 고야스 씨의 슬픔은 완전한 상실에 대한 슬픔이다. 옐로서브마린 소년은 소통이 단절된 외로움으로 인한 슬픔 같다. 카페 여주인은 실패로 인한 두려움으로 인한 슬픔 같다. 너무 정 없이 슬픔을 나열한 것 같지만, 슬픔에도 종류가 있어 보였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대충 느낌이 그렇다.


한 달 남짓 굳게 침묵을 지켰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 씌었다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한번 말문이 트이자 멈추지 못했다.

"그때 그 애가 하자는 대로 개를 데려왔어야 하는데" 그녀가 억양 없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개를 키우자는 말을 들어줬으면 그 대신 자전거를 사줄 일도 없었어. 내가 알레르기가 있어서 개는 못 키운다고 했어. 그래서 자전거를 선물했어. 생일 축하로, 그 작은 빨간색 자전거를. 그런데 자전거를 타기엔 너무 일렀어. 그렇지? 자전거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사줬어야 했는데. 자전거 때문에, 나 때문에, 그 애가 목숨을 잃고 말았어. 나한테 개털 알레르기가 없었다면 그 애는 사고를 당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을 거야. 지금도 우리랑 같이 즐겁고 건강하게 살고 있었을 거라고."


나는 턱 숨이 막히는 줄 알았다. 슬픔은 이렇게 표현되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자기만의 방. 깊은 심연. 두꺼운 문. 견고한 껍데기. 슬펐다. 실제로 이 소설은 나를 몇 번이나 울컥거리게 만들었다.


도시를 건설하게 된 그 소녀도 아마 깊은 슬픔을 갖고 있기에 도시가 건설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제 각기 다른 종류의 슬픔을 가진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서로 소통한다. 단절과 고립, 상실의 문제로 늘 헤매다가 유일하게 소통이 되는 존재들로 서로를 알아본다. 도시가 그 사람들을 연결해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나는 그들이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던 키가 <슬픔>이 아니었을까 싶었던 거다.


나는 말했다." 하지만 설령 내가 이곳을 떠나고 싶다 한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높은 벽에 엄중히 둘러싸인 이 도시에서 나가기란 결코 간단하지 않을 텐데."
"마음으로 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소년은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고했다. ".......... 당신의 분신이 그 용감한 낙하를 바깥세계에서 안전하게 받아줄 거라고, 진심으로 믿으면 됩니다."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미래를 등장인물들이 얼마나 씩씩하게 살아가는지 모른다. 가상의 도시라 할지라도 소통이 되지 않는 이 세계를 떠나 나의 존재를 알아봐 주는 곳으로 떠나겠다고 갔던 옐로 서브마린 소년. 알 수 없지만 미래의 도서관 관장으로 주인공 <나>를 점찍고 인수인계하는 고야스 씨. 결혼생활의 실패를 겪었지만 다시 한번 <나>와의 새로운 관계를 시도하는 카페 여주인. 사랑하는 여인이 건설한 도시지만 옐로 서브마린 소년에게 맡기고 이제는 떠나려는 <나>.


그 용감한 낙하를 바깥세계에서 안전하게 받아줄 거라고, 진심으로 믿으면 됩니다.


등장인물들의 용감한 낙하가 시작된 것이다. 슬픔은 때로는 이렇게 삶을 이끌기도 했다. 등장인물의 삶은 결코 정체되어 있거나 고립되거나 단절되지 않았다. 깊은 슬픔으로 인해 되려 삶이 격동했다.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고,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듯 새로운 무언가가 이들의 삶을 이끌었다.


누구보다 이들의 첫발을 응원한다. 그리고 나도 이렇게 주저 없이 낙하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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