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를 모르는 교장선생님_23.8.9

신앙이 뭔지.

by 소국

<백일의 낭군님> 드라마를 보는데 왜 이렇게 재밌는지.

요즘 사극에 빠졌다.


오늘 학교에서 생일파티를 했다. 맨날 생각하는 거지만 아이들과 어른들은 생각의 시작부터 다르다는 걸 느낀다. 어른들의 기본값은 뭔가 계획이 있다. 그런데 아이들의 기본값은 그냥이거나 재미가 기본이다. 어른들이 하찮아하는 이유가 아이들 일상의 기본값이다.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기어이 재미를 찾아내는 아이들이야말로 세계의 최대수혜자가 아닌가.


나는 이런 아이들이 부러운가 보다. 시시하더라도 뻔하더라도 일상을 즐길 수 있는 그들의 에너지와 호기심, 탐구력이 좀 부럽다.


다시 드라마 얘길 좀 하자면, <백일의 낭군님>이 너무 고고하다. 사실, 기억이 상실되어 한 나라의 세자가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채, 무언가 떠오르는 듯 떠오르지 않는 느낌으로 일상을 지속해 가는데... 그 과정 속에서 백성의 삶을 체득한다. 웃기는 말이긴 하나, 이 드라마가 너무 좋은 게 <정체성>을 얘기해 주는 것 같아서였다.


최근 박영선목사님이 기가 막힌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는데, <방향은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라는 말을 하셨다. 나는 이 말이 어찌나 가슴에 파고들던지. 내 삶의 방향성은 분명히 아는데, 내가 갈 수도 없고 그 능력도 없고, 길도 모르겠더라는게 내 신앙의 전부였다. 그런데 목사님이 나의 말 못 할 어려움을 콕 집어 얘기해 주시는 것 같았다. 그게 다다. 헤매는 게 다일 수도 있는 게 신앙의 전부와 끝일수도 있는 거다.


내가 대체 무얼 기대하며 대안학교까지 아이를 집어넣었을까.


대안학교 돌봄 교실의 교사로 있으며, 날마다 생각하는 건 아이들은 죄 없다. <어른이 문제다>였다. 사실 아이들은 알고 있다. 답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래서 어른들이 끼어들 필요가 없었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다시 <백일의 낭군님>으로 돌아가서.


세자의 기억상실이 흡사 나의 모습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인정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도 있겠지만, 신분이라는 건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니, 내가 그동안 가만히 지켜보면 고고해 보였던 믿는 자들의 모습이나 나의 모습이 사실 나의 신분을 피부로 알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스스로 고고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처한 현실은 바닥도 저 밑바닥이 없어 괴로웠다. 나의 신앙이 판타지가 될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판타지로 끝나는 신앙 인지 몰라도 그 드라마에 나오는 부인처럼 끈덕지게 살고 볼 일이다.


돌봄 교실에 한 아이가 있다. 아이가 교장선생님에 대해 얘기하면서 하는 말이 <선생님 교장선생님은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대요>한다. 귀엽다. 기독대안학교 교장선생님의 위치와 책임을 모르는 아이의 말이다. 나는 일개 학부모, 교사고, 신앙인이지만, 맥주를 좋아한다.


<백일의 낭군님>의 신분을 알지 못한 세자가 그 특유의 고결함을 잃지 않고 싶어 아등바등하지만, 백성의 삶을 걸국엔 본인도 겪게 된다. 술문제가 뭐 그리스도인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어쩌면 대안학교도 주변에서 보는듯한 그 시선, 귀족학교가 맞을지도....


맥주의 문제처럼 세상살이 문제가 쉽게 풀리면 누가 맥주를 찾을까. 교묘하게 속이고 속는 세상이라 괴로워 다시 맥주를 찾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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