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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국 Dec 10. 2023

삶의 도처에 깔려있는 죽음_23.12.10

죽음을 생각하면 오히려 편안하다.

남편은 이해가 안 될 나의 생각이다. 어디에든 말할 수 없는 깊은 내면이다.


오늘도 교회에서 설교말씀을 듣고 나왔다. 양의 문이 곧 예수님이라는 어릴 적부터 들었던 설교다. 말씀이 피부로 와닿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말씀이 인격이 되어 나의 영혼을 깨우는 건 전혀 다른 것이기에, 주일에 교회 한번 간다고 일상이나 나나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단지, 최근에 아이들과 잠자리에서 누워 대화를 나누다가 한 가지 크게 와닿았던 것이 있다. 나에게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얘들아, 너네들이 예수님한테 엄청 기도를 했어~ 근데 그게 안 이루어지면 어떻게 할 거야?>


둘째: 음.. 좀 슬플 것 같은데.. 그런데 괜찮아. 또 기도하면 되지..

첫째: 근데 나는 기도해서 이루어졌는데? 저번에 학교에서 나누소 직원 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됐는데?

엄마: 근데 기도를 하다 보면 안 이루어질 때도 많아. 뭐 이유가 있겠지만 정말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있지. 그렇다고 예수님이 너네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건 아닐 거야.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말끝에 나는 이런 말을 했다.


엄마: 그런데 얘들아,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게 무슨 뜻이야? 왜 죽은 거야?

첫째: 음.. 그건 우리가 죄인인데, 우리를 구원하려고 죽은 거야. 죄를 없애려고.

엄마: 엄마가 문득 드는 생각이 예수님이 죽으신 게 값을 치르는 거랑 똑같구나 싶어. 봐봐. 너네가 물건을 살 때 돈을 주고 물건을 사잖아. 그래야 너네 '것'이 되지. 가질 수 있는 거야.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것' 하고 싶은 건데... 그러려면 값을 내야지. 그러니까 십자가에 예수님을 죽이고 값을 치른 거지. 그래서 우리는 누가 뭐래도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것'이 되는거야. 그러니까 나는 신분이 확실하지.


이건 나의 설명이 아니다. 나의 깨우침도 아니다. 하나님이 알게 하신 소중한 깨우침 같다. 예수님의 희생의 본질은 상속자(자녀)에게 누리게 하시려고 희생을 치른 거다. 모르겠다. 신학자도 아니고, 철학자도 아니지만. 단지 피부로 와닿은 건 예수님을 믿는 본질은 하나님의 자녀 된 삶을 충분히 누리길 바라신다는 것이었다. 율법에 구속된 것도 아니고, 그저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자유함을 얻길 바라는 그 본질 하나로 모든 것이 가능함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값을 치르는 희생은 모든 부모의 마음 같은 거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기꺼이 밤늦도록 일하고, 내 평생의 자유가 종속되는 것 같아도 기꺼이 희생을 감내함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본질이기 때문 아닌가.


삶이 우리에게 소중한 이유가 근본적으로 누군가의 희생이 기본적으로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알건 모르건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기회와 자유, 그에 따른 책임이 눈앞에 놓여 있다. 선택은 우리 몫이지만, 우리는 분명 그저 그런 희생으로 여기에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러니 삶을 소중히,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


날마다 눈 떠보면 죽음이 도처에 깔려 있는 듯한 현실이다. 생각보다 현실은 전쟁터이고, 1분 1초가 행정처리 하듯 빠르게 지나간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빨리 결정하고 선택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결국은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듯하고, 내가 잘 살고 있는지조차 의문이 든다. 길을 헤매는 사람처럼 오늘도 방황했구나 싶다.


죽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내고, 죽을까 봐 무서워서 힘내서 산다. 그런데 사실 나는 죽음을 묵상하면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죽음의 양면성이 있기 때문일까? 죽어야 사는 것이다. 두려움이 죽고, 불안이 죽고, 회피가 죽고. 죽어야 살 수 있는 모순이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이기까지 한 결정이 남들 눈에는 미친 결정 같아도, <죽어야 산다>는 이 진리를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것 같았다.


나는 값을 치르는 인생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죽어야 산다는 생각을 안고 인생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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