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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국 Dec 04. 2023

어떤 일은 1초를 위해 평생을 기도해야 할 수도 있다.

억울해말라. 기도제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_23.12.4

요즘 들어 교회 가서 잠만 자고 나온다. 미친 듯이 피곤하다. 알 수 없다. 왜 그렇게 피곤한지. 늘 남편은 나를 안쓰럽게 여긴다. 체력도 안되는데, 잡일이 많아 닭처럼 졸고 있는 게 안쓰럽겠지.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이 뭐 맨날 불공드리듯 교회에 와서 염불외고 앉았나 싶을 때가 있다.


타 종교와 기독교의 다른 점은 죽은 신과 대화하는 게 아니라 살아계신 분과 대화한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문제는 내 상태가 매일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다. 이유는 내가 그걸 꺼려한다. 분명한 이유다. 그럼 왜 꺼려하나.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나의 판단이나 선입견 때문이다.


존재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문제다. 늘 브레이크가 걸리는 부분은 하나님을 조금 알겠다 싶다가도, 하나님께 잘 보이기 위해 용쓰다가 혼자 지쳐 떨어진다. 이건 윤리도 도덕도 아니라 관계의 문제인데, 자기 혼자 난리부루스인 거다.


그러니 신앙의 발전이 없다.


불공드리듯 하는 기도는 사실 무의미하다. 나도 해봤다. 그런데 불공드리듯 할 필요 없다. 진짜 그건 무의미하다. 나는 진정한 기독교의 파워는 존재와 존재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인식하고 대화가 가능할 때 비로소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세상이 해석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나는 요즘 되지 않는다.


뭐 평생에 걸친 작업이 될 수도. 당장 내일 이루어질 수도 있겠는데. 내가 별로 원하지 않아서 이루어지지 않은 걸 수도 있겠는데. 실상이 그렇다.


요즘 뭐든 시원찮고 매사 불만이 가득해서 그런지, 참 쉽지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어서 이렇게 된 건지. 어쩐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다만, 스스로 생각하길 이루어지지 않는 기도고, 염불 외듯 하던 기도라도, 기도를 왜 해야 하나 고민해 보니 <어떤 찰나의 순간>을 위해 해야 하는구나 싶은 거다. 나는 비록 염불 외는 기도였을지언정, 나는 비록 지금 현실에 와닿지 않는 피상적인 기도였을지언정 중요한 건 다가올 미래에 내가 알지 못하는 찰나의 순간들이 아마 기도의 빛을 발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그것이 만약 단 1초일지라도. 그 순간을 위해 평생을 기도하는 게 믿는 자의 숙명 같은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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