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적인 부부 관계의 민낯_23.12.10
부유하는 마음의 원인이 남편은 아니다.
40살을 앞두고, 불안한 미래와 경제적 문제 앞에 나는 날마다 날이 선다. 꿈에서도 나오는 카드값에 순간 놀랐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300만 원이 넘게 쓰는 걸 보는데.... 중요한 건 멈추지 못하는 내 손이었다.
남편에게 꿈 얘기는 하지 않았다.
단지, 남편과의 대화가 날로 식어간다.
뭐라고 꼭 집어 뭐가 문제다.라고 할 수 없어서 관계의 문제에 대해 <남편이 틀렸고, 제가 옳습니다.>도 아니고 <남편이 맞고, 제가 틀렸습니다.>도 아니었다. 알 수 없이 대화 속에서 미묘한 어긋남이 언제부터인가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남편에 대해 결혼 전부터 100% 마음을 연 것은 아니었다.(나는 사람들을 잘 믿지 못해서 남편이라고 쉽게 마음이 열리진 않았다. 단지 기도하고 어떤 확증이 있어서 결혼했다.)그런데 결혼 후에도 쉽사리 나는 <이 남자가 안전하다>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쓴다. 나의 기분과 감정을 살피고, 가정을 위해 노력한다. 하나하나 기억하고, 최대한 도와주려는 하나, 새벽부터 밤까지 늘 일을 하는 입장이라 사실 지쳤다. 몸과 마음과 생각이 다 지쳐 보인다.
남편이 지쳐가는 사이, 나도 지쳤다.
가정이라고 그냥 돌아가는 시스템이 아니다. 끝도 없는 집안일, 아이들 돌봄, 재정 관리는 내 몫, 장보기, 어머님 시키시는 일(밭일이든 김장이든), 파트타임이든 풀타임이든 해내야 하는 나의 일. 몸이 열개였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편은 <수고했어><고마워> 라며 아이들의 무대 공연을 보며 감격하며 말하지만, 사실 나는 별로 와닿지 않았다. 언제 또 재정 얘기를 들먹이며 날이 설지 모를 일이다. 언제 또 양육 문제, 집안살림 등을 들먹이며 날이 설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꼼꼼하고 섬세한 탓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 사람도 감정과 기분을 조절하지 않고 표출하는 사람이다. 침묵하거나 폭발하거나. 요즘은 발끈 정도에서 멈추는데, 이유는 내가 적당선에서 삐딱하게 말하는 것을 멈추기 때문이다.
유머가 없는 우리의 관계는 늘 무겁다. 오히려 아이들의 웃음소리 덕분에 부부가 따라 웃을 때가 많다.
남편과 내가 마주 보고 하는 대화의 주제가 매번 양육문제, 재정문제, 미래 계획 등이라서 너무 답답했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현상 유지가 되고 있지만, 늘 불안에 떨게 만드는 우리의 대화가 과연 옳은가? 그렇게 고민한다고 더 잘 살아내지는 못했고, 대화의 끝은 늘 서로에 대한 답답함과 끝맺지 못한 대화로 끝났다.
부부관계를 잘 해내고자 하는 노력이 나에게는 없다.
안정감을 남편에게 얻지 못하니 스스로 내게 주어진 삶에서의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아등바등 애썼던 것 같다. (남편을 욕하는 건 아니다. 단지 방식이 나에게 적합하지 않고, 관계는 노력의 차원을 넘어선 무언가가 필요함을 느꼈다.)
우리는 사랑했을까?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그가 미웠고, 불쌍했고, 동정했고, 애틋했고, 절망도 했고, 의지하기도 했었다. 이게 사랑의 과정이라면 사랑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관계에도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이상과는 다르게 현실은 서로를 생각보다 모르고, 생각보다 관심이 없으며, 생각보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 그리고 더 문제는 바쁜 일상의 타이밍이다. 잘못된 타이밍은 오해와 갈등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그게 과연 누구 잘못이라고 할 수 있냐는 말이다. 그냥 열심히 살다가 지쳐서 졸혼하는 게 이런 거 아닌가?
은혜가 필요한 이유가 이런 거다. 결국 어쩌지 못하는 현실과 상대의 마음 때문이다. 나의 힘듦으로 상처받은 그들을 내가 뭘 어쩌지 못한다. 나도 힘드니까. 이게 내 한계니까. 그러니 이러한 관계와 냉담한 현실 앞에 날마다 은혜가 부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