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요즘은 이유가 없다. 내가 가정폭력 가정에서 자랐어도 가정이라는 것을 선택했고, 내가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남자를 배우자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된 과정에는 <부실한 믿음의 과정>이라는 게 있었다. 그래도 나는 아이를 낳았고, 이것이 축복보다는 고통이었지만... (준비가 되지 않아서) 아이가, 가족이 내 삶의 이유가 되긴 했다.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나의 감정.
<하나님에 대한 미움>이다.
밉다. 너무 밉다. 왜? 이렇게 말하면 안 되나? 목사님한테 혼날 일인가? 하나님 정말 밉습니다. 따져 묻고 싶을 정도로 인생이 괴롭습니다. 이러면 왜 안돼?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 같은 거지 같은 인생이라고 하면 미친년이라고 할 건가?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러면 안 된다고?
나는 하나님은 정말 관대하고 생각한다. 관대의 끝이 하나님이라고.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그게 하나님이다. 그런데 세상이 오히려 더 정교함을 원하고 거룩함을 원한다. 세상이 더 종교적이다. 그래서 나 같은, 교회 다니는 사람은, 거지같이 느껴지는 것이다.(감정을 다 털지 못해서) 미친 세상인 건지. 아님 이게 내가 미친 건지 싶은 거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닌데,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향해 기대하고 있으니, 나같이 어설픈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하지도 않은데.... 참.. 슬프다. 떠보는 뉘앙스도 그런 거 아닌가? 나도 별반 다를 게 없다. 허울만 좋을 뿐. 당신들처럼 하나님(신 혹은 하늘) 욕하고 삽니다.
원망을 하게 놔두는 신이야말로 사랑이 많은 거 아닌가. 그게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 아닐까. 나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믿었다. 내 선택과 내 삶을 응원하는 하나님을 믿었다는 뜻이다.
슬픈 인생이었다. 원망을 하나님께 퍼부어봤다. 지금도 퍼붓고 있고.. 내 슬픔에 잠길 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그게 전부다. 그런데 가끔 그 장소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느낀다. 살아야 하니까 미친 듯이 살았던 점 같던 순간들에 옆에 계신 하나님. 누가 알랴. 나의 슬픔을. 같은 상처를 가졌다고 같다고 볼 수 없다. 깊이와 고통은 다르니. 외로움은 상처의 고통보다 더 괴롭다. 그 외로움을 위로받는 듯했지만, 나는 더 원했다. 완벽하고 완전한 채움과 위로와 사랑을. <내가 보호받고 있고, 안전하다>하는 느낌을 원했다.
내가 사는 세계를 믿고 싶었다. 그런데 믿을 수 없었다. 그냥 보이는 모든 게 불완전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모순적이었다.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끝없는 이해관계와 모순이 보인다. 가족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