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평생 열심히 일할 줄 알았는데..
친구인데, 나보다 나이가 2살 많은 언니다. 대학동기인데. 간간히 계속 연락을 해왔다. 늘 3명이서 만나는 대학동기가 있는데 그중 한 명이었다.
언니는 경기도에서 재단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이었다. 월급 원장님이었고 싱글이었다. 게다가 언니는 주식과 투자에 모든 월급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리고 언니의 꿈은 복권방을 이곳저곳 탐방하는 게 꿈이었다. 1등 자주 나오는 곳으로. 늘 노후가 걱정되는 마당이라서, 언니의 원대한 계획은 주식과 투자는 계속하고 나중에 노후계획으로 일을 하지 않고 노후에 살 것이라는 포부로 투자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꽤 재밌는 사실은 언니는 간간히 웹소설도 썼었다. 웹소설이 그렇게 재미있단다. 특히 막장 웹소설)
그런데 언니가 갑자기 실업자가 되었다 한다. 어린이집에 올 아이들이 없어서 재단 측이랑 이야기 한 뒤 폐업을 결정하게 되었단다. 언니에게는 예측된 미래였겠지만, 나는 어째 너무 놀랐다. 문제는 언니의 태도가 너무 여유롭다. 언니는 그랬다. <15년 일했는데, 뭐 난 상관없어. 불안하지도 않고 그냥 이제 좀 쉴 거야.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언니에게 계속적인 제안이 들어왔단다. 여수에 새로 오픈하는 어린이집이 있는데 가볼 생각 없냐. 경기도에 새로 오픈하는 어린이집이 있는데 가볼 생각 없냐. <저는 서울 아니면 어디든 갈 생각 없습니다> 딱 잘라 말했다는 언니. 이미 마음을 굳힌 언니는 편안해 보였다.
참 대단한 용기다. 요즘은 일을 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고 관두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직장인들의 고충은 다 비슷할 텐데, 싱글이라서 더 쉽게 결정이 되었을 거라 치부하고 싶지 않았다. 요즘 싱글들도 무서워한다. 미래를. 내 몸뚱이 내가 책임지고 살아야 하는데.. 막상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사람이 평생 살아온 삶의 기본값을 돈이 없다는 이유로, 혹은 유지가 힘들어서 하나씩 포기하는 건 생각보다 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대부분은 포기하지 않는다. 곧 죽어도 카페 커피는 꼭 먹는 것처럼.
아무튼 언니는 도대체 15년을 어떻게 직장인으로 버틴 것일까. 나의 고충을 쏟아내고 나니 약 1시간 안에 우리가 만나지 않은 시간들 동안의 나의 이야기가 압축되었다.(엄청 심각하게 살았는데 참 별거 없었다.)
원장님의 말씀은 딱 한마디.
<야, 너무 열심히 하지 마. 니 장점은 뭐든지 열심히 한다는 거야. 갈아 넣어. 근데 나는 뭐든지 80%만 해. 그리고 20%는 나를 위해 남겨둬. 뭐든지 그래. 최선을 다하지 않아>
일하다 느끼는 자격지심과 부러움등 온갖 감정에 대해서는..
<야, 왜 그걸 네가 그렇게 생각해?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넌 네 몫만 하면 되지. 네가 자격이 안되었으면 애초에 뽑지도 않았지. 그리고 윗사람은 그 이상을 바라지 않아.>
맞는 말이다. 그 말이. 직장이나 가정이나 내가 느끼는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뭐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내가 보니 남편은 이미 날 다 파악했고, 어머님도 그렇다. 직장 내 사람들도 날 다 파악했다. 나 혼자 잘해보려고 전전긍긍.. 아 잘 생각해 보니.. 잘해보려고가 아니라 날 가만 두지 않는 그 사람들을 욕하며. 욕하고 나니 마음이 찝찝해서 약간의 죄책감에 혼자 무거운 것이다.
쿨하디 쿨한 원장 선생님 말씀이 날 정신 차리게 한다. 별거 없는 인생인데, 왜 이렇게 무겁게 사는 건지. 막상 15년을 일해도 애들 없으니 문 닫는 어린이집을 보라.
인생이 그런 건데,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았는지. 뭐 하나 펑크 날까 봐 난리를 쳐가며 살아도 남들을, 나를 만족시키기가 참 어려웠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삶에 대해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지, 내가 처한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요령과 기술만 늘어서 날마다 본질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건가 싶었다. 원장님 멘털처럼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어도 <뭐 난 상관없어>할 수 있는 쿨함도 없다. 참...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