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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

인간이란 존재는 별거 없다_25.6.22

생각보다 어설프고 미숙하고 먼지일 뿐.

by 소국

타교회에서 시 사업으로 지역주민들에게 강좌를 열어서 무언가를 가르친단다. 나는 다른 교회 다녀서 괜찮은가 싶었는데, 시에서 지원하는 사업이라 괜찮단다. 그래서 큰 아들과 그의 친구가 기타를 배우게 되었다. 엄마들끼리도 편하게 대화하는 사이라 이런저런 얘기하기 편해서 선뜻 내가 제안했고, 그쪽 엄마는 선뜻 수락했다.


카페에 들어가 대화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신앙이야기였다. 신기하게 그 엄마를 만나면 종종 서로의 신앙관에 대해 이야기가 깊어졌다. 조심해야 할 부분인데도 우리는 거침없이 이야기 나누었다. 내 생각은 이렇다. 내 생각은 이렇다. 하며 각자가 생각하는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갔다. 그러다 보면 <인생관>까지 나온다.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한가까지 나오기 마련이다. 최근에 본 책, 영화, 드라마 얘기를 빗대어 엄청난 이야기들이 줄지어 쏟아진다. 어찌 보면 자기 신념에 관한 이야기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 엄마가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사건에 대해 본인이 지닌 신앙관으로 해석하며 이야기한다. 집안이야기이다. 게다가 시댁이야기이다.


남편과 시댁과의 갈등이 주요 이슈였다. 요점은 남편과 원가족이 과거로부터 해결되지 않은 아픔과 상처가 있다. 엄마의 과한 신앙심 때문에 같은 신앙인임에도 엄마의 처사가 영 맘에 들지 않고 언행이 불만족스러웠던 것이다. (그건 신앙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남편은 그것이 상처고 아픔이었다. 게다가 형제들 간에도 신앙으로 회복되었다 하지만 서로 간의 섭섭함과 골이 깊은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여기서 문제는 듣는 이로 하여금 그야말로 띠용! 하게 만드는 이상한 멘트들이 문제였다. (같은 신앙인이라는 전제하에 하는 말들이 가관이다)


<오빠 때문에 내 어린 시절이 얼마나 자존감이 낮았는지 알아? 그런데 나는 지금 하나님 믿고 얼마나 회복되었는 줄 알아?>


이 말을 들은 아들친구엄마와 아들친구남편은 말이냐. 방귀냐. 싶었단다. 뭔 말이냐. 이 사람들이 황당했던 포인트는 그래. 하나님 열심히 믿는 건 인정. 그런데 왜 엄마 이삿날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냐. 죽어라 일하는 건 난데.. 네가 뭔데 섭섭하다 뭐다.. 말하면서 하나님까지 들먹이냐. 는 것이다. (남편이 시누이한테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단다.) 엄마 곁에서 나름 최선을 다한 모양이었던 아들친구네 부부는 시누이네 가족은 교회에서는 열일을 하지만 가족모임은 늘 뒷전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비쳐서 사실 내심 불만족스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감히 어린 시절 이야기, 하나님 이야기를 들먹이니 기가 차는 노릇이라는 표정이다.


게다가 남편도 늘 엄마에 대해 불만이었던 것이, 교회 열심당원처럼 일하시는데, 가족은 뒷전이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시댁 가족들이 뿔뿔이 가 되고 가족모임이 제대로 한 번을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엄마는 뭐라 할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엄마에게 말했단다. 다 엄마의 책임이라고. 게다가 엄마는 그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했단다.


우리는 얼마나 어리숙한가. 우리가 사는 모양을 보면... 그게 참 부끄럽다.


그 열심당원 어머님이 문제일까? 나는 아들친구엄마에게 말했다. 그런 사람들이 없었으면 교회시스템은 진작에 무너졌을 것이라고. 어떤 마음으로 열심을 내었는지는 모르고, 판단도 하나님 몫이지만 그걸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분의 열심과 신앙은 오히려 격려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인가? 가룟유다도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도 가룟유다를 사랑했다. 그런 맥락이라고 생각했다. 친구엄마는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마리아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데, 마르다도 자신의 방법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냐. 그러더라.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은 그 둘을 다 사랑했다. 그게 중요하다.


직업이 교회 관련된 일이 아님에도 교회에 올인한 엄마를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아들. 그런데 나는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다. 목사님, 선교사님들의 사모님들이 우울증이 많은 이유가 가정을 소홀히 해서 그런 거라고 알려줬다. 신앙을 핑계로 가정을 소홀히 해서. 요점은 가족문제는 신앙과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신앙을 거둬내야 솔직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앙을 거둬내고 말하는 것이 신앙인들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참... 갈수록 깨닫는다. 믿음은 그런 게 아니다.


본질적 문제를 왜곡시키기 좋은 게 신앙이라는 것을 오히려 믿음을 갖고 신앙생활을 해보니 느낀다. 핑계대기 좋은 게 신앙이다. 하나님의 섭리요. 은혜라고 하면 만고땡이다. 그런데 말이다. 인간세상은 그런 게 아니다. 사람대사람이다. 인격체이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 같은 신앙인끼리는 <너만 신앙 있냐! 나도 있어!> 이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본질은 결국 가족끼리 솔직하게 나눠보지 못한 마음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아팠다. 상처받았었다. 미안했다. 그래도 사랑한다. 이런 말들이 오가야 해결되는 문제를 이상한 데로 불똥 튀게 만드는 것 같다.


답답하다.


직장문제, 돈문제, 남의 가정, 내 가정 다 마찬가지이다. 신앙이라는 게 믿는다고 끝이 아니고 여정이다. 문제를 기도할 수는 있지만 신앙과 삶을 결부시켜서 이상하게 왜곡시키지는 말아야지. 이상한 말 하지 말아야지. 저 사람도 사람이고 판단 가능하고 인격체란 말이다. 사고가 가능한데 우리는 자주 잊어버려서 본인의 신념을 신앙이라고 믿는 것 같다. 열심당원의 그 어머님만 그런 실수를 하겠냐? 나도 그런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그분의 열심이 안타까울 뿐이고, 한편 그 가족들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열쇠는 하나님께 있는 게 아니라 내가 풀어야 할 노릇이다. 결국 내가 첫걸음을 떼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다.


사람이다. 결국은 우리 모두 두렵고 떨리고 잘 모르겠고 미숙하고 어리석은 사람일 뿐이다. 나는 다르다 생각했지만 결국 같고, 나는 성장했다 여기지만 결국 제자리를 도는 것 같은 게 사람이다. 성경은 이미 <먼지> 같은 존재임을 못 박아놨다. 그게 우리 수준이다. 그런데 여기서 실수가 어설프게 아는 성경으로 하나님, 인간, 인생을 해석하고 끼워 맞출 때 결국 인간의 눈일 뿐이라는 것이다. 모른다! 우리는! 그런데 자꾸 신념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해석해서 오류발생한다! 그러니 다물어야지. 더 다물어야지!


그냥 하나님 입장에서는 다 같다. 너나 나나. 열심당원의 속이나. 나의 속이나. 다 마찬가지라서 사실 하나님 앞에 서면 할 말을 잃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게 도대체 뭐 하는 건가를 생각해 보면 이게 신앙이 아니구나를 오히려 깨닫게 되는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나 싶다. 과연 우리의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느냔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들면.. 무슨 생각이 드냐면.. 과연 하나님의 긍휼 하심은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왜 날 사랑하지 라는 의문이 든다. 나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아마 대부분 이러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그러니 그냥 너무 율법적일 필요도 없고, 깨닫는 만큼 한걸음이다. 그리고 그냥 감사하면 될 일이다. 사랑하기 어려우면 어쩔 수 없지 뭐. 그게 우리 수준인데. 아등바등 너무 열심히 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동기 불순. 의도 불순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어진 인생을 사랑하면.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하나님이 날 긍휼히 대해준 만큼 용기 내서 다가가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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