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기를 써야겠다.

멘탈이 저세상인 오늘(2022.05.03)

by 소국

첫째아이와 둘째아이가 각각 학교에서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새벽5시30분에 일어나 아이들 가방을 싸놓고 준비물을 챙겼다. 아이들이 오늘도 무사히 잘놀고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나는 오늘 박물관 전시 개막 전날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바지를 입고 열일할 복장으로 출근을 했다. 그런데 버스 한대를 놓치고 다음차를 타고 출근했다. 몸은 천근만근. 다행히 지하철을 제시간에 탈 수 있어서 원래 출근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다. 7시 30분 도착.


전시 개막 전날이니만큼 박물관 내는 긴장감이 돌았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숨이 막힐정도로 긴장되는 분위기였다. 기자간담회 2시까지 모든게 끝나 있어야하는 줄 계약직 따위가 알리가 있나. 너무 바쁘니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눈치껏 알아야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하는 홍보 따위가 중요한게 아니라 공사판인 전시장이 아주 깔끔해져야 하는 상황인데 그냥 공사판 분위기인것이다. 사실 눈치껏 전시장에서 학예사 선생님들을 돕는다고 소일거리라도 찾아했지만, 그당시 상황자체를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왜 이렇게 다급한지 뭐가 문제인지 파악도 안된채 일단 분위기상 서두르시는 두 분의 선생님 스텝에 나도 뭔가라도 해야한다는 생각에 쓰레기라도 주웠던 것이다.


참 나도 답답한 상황이다. 아마 선생님들도 학예사가 아닌 전공분야도 아닌 계약직 아줌마가 답답할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는 돈을 벌어야하고 박물관은 나를 뽑았으니 전공분야든 아니든 일이 이해가 되든 안되든 뭐라도 찾아서 일함으로 상부상조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일을 했다.


하다못해 청소라도 하고 하다못해 자리지킴이라도 한것이다. 그러다 이게 뭐하는건가 싶다가도, 아니다 이것도 중요한 일이다 마음을 다잡으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가고 학예사 선생님들의 스텝에 맞추기 위해 나름 애썼다. 부질없어 보이는 일마저도 나름의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그리고 퇴근했다.


그러자 하루종일 긴장한 탓인지 맥이 탁 풀렸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다. 나의 일과 2탄이 기다리고 있었다. 육아이다.

육아는 중요한 부분인데도 온종일 긴장했던 오늘 같은 날은 건너뛰고 싶다. 그런데 사실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아무리 할머니. 아빠가 있어도 육아의 최종 마무리는 엄마몫이다. 첫째아이는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들어오고 둘째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날이라 한껏 들떠있는 첫째가 친구들과 1박2일 모임을 가고 싶은데 할머니의 허락이 필요한것이다. 어머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이건 뭔 폭탄같은 소리를 한사발 들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웠길래 말을 들어먹지를 않냐, 노는게 중요하냐, 애 교육은 어떻게 시킬거냐, 인성이 중요하지 않겠냐 등등등.


참을인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잘 들어봤다. 어머님이 도대체 하시고 싶은 말씀이 무엇일까? 어머님은 내가 바뀌지 않을 것을 알면서 그저 자신의 답답함을 하소연 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생각했다. 평소 며느리의 교육관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어머님은 이참에 다 말씀하신것이다. 하. 정말 쉽지 다.


대안학교에 다니는 것부터 시간만 되면 아이를 놀리려는 며느리가 어머니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러면서도 교육에 대한 확신은 없으시기에 우리에게 최종적인 결정이나 책임을 맡기시긴 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단지 본인이 아이들을 맡았을 때 아이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내 책임으로 돌리는것이다. 일부 맞는 얘기지만 일부는 틀린 얘기도 있다.


어머님은 평소 아이들을 돌보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말대꾸. 태도. 경청과 같은 부분이셨다고 한다. 어디가서 주눅 들지 않고 자기의사표현을 당당히 하는 점은 좋지만 이상하리만큼 집안식구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는것 같다는 것이다. 9살의 아이를 내 식대로 하려는 집안식구들의 마음을 이 아이가 모를리 없다. 9살쯤 되면 의도가 자기 눈에 보이는데 어른들이 포장해서 얘기한다고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납득이 되어야 움직이고, 이해가 되거나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을때 소통이 되는 것인데, 하물며 동물도 그런것인데 이걸 9살 아이가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난 생각했다.


<우리 집 식구들이 대화가 안된다고.>


그런데 나도 어머님과 대화가 안된다고 느꼈다. 의도가 선하고 자식걱정하는 마음에 그렇다지만 말투며 태도며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무시하는듯한 느낌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살아온 인생이 그러하시니 위계질서를 이해하지 못하는건 아니지만 아이들이 이걸 사랑으로 여기긴 쉽지 않을것이다. 그렇다고 어머님의 사랑을 그냥 무시하고 싶진 않았다.


어디든 중간자의 역할이 제일 어렵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다리 역할이 되는게 정말 쉽지 않다. 나는 어머님과 우리 아이들이 함께 있는 시간이 서로에게 괴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본적으로 자식 잘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나나 어머님이나 같다고 여기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 어머님도 언젠간 아이들을 이해하실 날이 오겠지 하며 기다리는게 방법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마음이 먼저 감정적으로 욱하니 올라오지 않길 바란다. 자기입장만 주구장창 얘기하는 통에 들어주기 괴롭다며 상대 마음을 무시하는게 아니라, 적어도 육아의 괴로움을 아는 나는 어머님을 이해하고 조금 더 기다려야하지 않을까 고민끝에 결론을 내린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쉽지 않지만, 나나 어머님이나 아이들이나 남편이나 각자의 자리에 각자의 무게만큼 살아내고 있다. 존중과 배려를 남용해서 마음없는 말과 행동으로 관계가 소원해지는것이 아니라, 말이 없어도 마음깊은 이해와 수용으로 심적으로 끈끈한 애정이 우리가족 안에 넘쳤으면 좋겠다. 그런날이 올까? 헛된 기대일런지 몰라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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