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통수 치는 날씨, 뒷통수 치는 소식
삶이 매일 그렇다. 놀랍지도 않다.
오늘의 한강뷰. 비가 올듯말듯 한강.우리집은 제사를 안 지낸다. 이유는 친정의 원가족이 이혼 가정이었기에 제사를 지낼 사람도 없거니와, 친척들과의 관계도 소원하다. 아빠가 돌아가신지 1년이 되어간다. 나는 양력으로 6월 1일을 기억한다.
2021년 6월 1일에 아빠가 숨을 거두셨다.(아빠가 숨을 거두었다는 표현이 맞다. 그걸 봤다.) 나는 그때도 병간호 중이었기에 그 모습이 아주 생생하다. 아빠는 뼈만 남은 상태로 인공호흡기를 끼고 입을 벌린채 아주 힘겹게 숨을 내쉬다가 가셨다. 아주 앙상해서 갈비뼈가 훤히 다 보였다. 샛노란 피부에 이상한 냄새가 진동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그날도 나는 소파에서 쭈구리고 자면서 옆에 있었다. 5월 30일 쯤부터인가 간호사들이 임종을 준비하라고 조심스럽게 계속 얘기했었다. 자리를 잠시라도 떠나지 말라고.
그러곤 우리 엄마가 아침쯤 왔던거 같다. 엄마는 미워도 마지막 임종은 봐야할것 같다면서 보러 오셨다. 그러더니 <지혜아빠 아무걱정말고 편안히 가~> 이런 소리를 하셨다. 그때도 나는 아빠에게 정이 없어도 최선을 다하는 보호자니까 찬양도 틀어드리며 내 툴툴거리는 목소리를 뒤덮을수 있도록 했다. 아픈데 옆에서 짜증나게 하면 안되니까 라는 얄팍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사실 아빠는 진통제를 극도로 많이 써서 통증을 못느끼고 임종이 임박했을 당시에는 정신도 혼미하고 동공까지 열렸었다)
아빠는 엄마가 온 뒤로 가셨다.
나는 참 지금 생각하면 뭐가 그렇게 두려웠는지, 아님 나밖에 모르는 극도의 이기주의였는지 죽어가는 아빠 앞에서도 일말의 연민이 없었다. 다 그냥 남들 하듯 따라한 것 같다. 환자를 그냥 환자로 대한 것이다. 아픈 사람.
그런데 정말 일말의 연민도. 정도. 사랑도. 뭣도 없었다. 보호자로써 병치레 시간의 괴로움은 느끼는데 아빠와 통하지는 못했다. 소통. 대화. 따뜻함. 위로. 안심. 평안과 같은 감정을 나누지 못했었던 것 같다. 극도의 이기주의로 아빠를 아무것도 못하는 송장처럼 보며 뒤치닥거리 하기 바빴던 것이다. 사실 환자도 감정이 있었을텐데.
해방일지를 보는데 왜 그렇게 아빠 생각이 나는지.
드라마를 봐서 생각이 나는건지.
기일이어서 생각이 나는건지.
아니면 나의 뇌의 회로가 슬픔을 극대화시킬라고 이 감정에 나를 허우적거리게 만들라고 괜히 그러는건지.
(나의 힘듦을 탓할 구실 찾느라 바쁜애마냥)
뭐 이유는 명확히 알수가 없다.
해방일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나는 오랜만에 생각나는 교회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와 결이 비슷한 아이다.(만약 이 말을 듣는다면 동생은 겁나게 짜증낼수도 있다. 내가 왜 너랑 같냐고 소리지르겠지.) 신기하게 교회에서 만난 동생인데, 가정사를 속속들이 다안다.(교회라고 모든 친구들 가정사 속속들이 다 알기 어렵다.몇몇 친구들만 안다.) 가정사만이 아니라 사실 이 아이의 슬픔을 너무 잘 안다.(이 말을 들으면 아마 또 니가 뭘알아 할수도 있다. 갑자기 서라운드로 그아이 목소리가 들리는것 같다.)
우리는 기쁜 일은 서로 나누지 않아도 슬픈 일은 꼭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슬픈데,딱히 연락할데도 없는데, 차오르는 이 슬픔이 감당이 안될 때 우리는 연락을 한다. 걔는 몰라도 나는 적어도 걔에 대해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면 묵묵히 들어주고 같이 울어주고 욕도 해주고 했다. 그 아이는 자살시도도 여러번 했지만 (내입장에선 다행인데) 살았다. 살 목숨이라 산건데 행복을 느끼는것보다 슬픔을 느끼는게 익숙한 우리들은 항상 슬플 때 연락을 더 편안하게 했던 것 같다.
<언니 살려줘>하며 울며 전화도 온다. 그러면 나도 울고 한달음에 못가는 내 처지에 환장한다. 참 상황 거지 같고, 이런 애가 행복하게 살아야하는데, 병신같은 새끼들만 행복하고 이런 애는 인생에 쳐두들겨 맞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아빠 병간호때문에 대학병원 드나들때 아빠는 통증에 괴로운데, 수발도 제대로 못들고 상냥하지 못한 딸이 불편해 늘 호통을 쳤다. 그러면 나는 멘탈이 나가서 대학병원 로비에 가서 울면서 얘한테 연락을 한다.(남편이 떠오르지 않는다. 일하느라 바쁠텐데. 이 생각이 떠오르면 전화를 못한다) 그러면 아무소리 없이 받아준다. 내가 헛소리할때는 끊어버리는데, 이런 슬픔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같이 엉엉 울어주고 미련없이 끊는 사이다.
결이 비슷한 내 동생한테 해방일지 봤냐고 물어보려고 전화했다. 오랜만에 생각나고 수다를 떨고 싶었다. 그런데 일단 나는 뭔가 이런 일반적인 일로 연락을 할때는 혼나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조심스럽다. 내가 나이는 언니여도, 이 동생은 끽 소리도 못하게 팩폭을 날리는 여자라 내가 조금만 헛소리를 해도 봐주질 않는다. 우리 둘 다 서로의 슬픔에만 관대한 사이여서 그런지 낯가지러운 얘길 못한다. 평범한 대화도 무뚝뚝이 흘러넘친다.
그런데 해방일지 봤냐는 소리를 잘지내냐고 물었더니 못지낸단다. 순간 긴장했다. 뭔일이 있나.
<엄마가 암이래>
진짜 어이가 없다. 해방일지 끝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빠 돌아가시고 평범한 일상이 된지 이제 1년이다. 사실 그 평범이라는것도 버겁다. 그런데 참. 냉정하게는 남의 일이지만, 너무 마음이 아팠다. 마음이 아팠다기보다 인생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다. 동생 어머님을 잘 알아서 그런것 같다. 심적으로는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냥 어머님이 살아온 세월이 그 찰나에 머릿속을 싹 스쳐지나갔다.(간간히 동생은 과거 부모님에 대해 얘기를 종종 했기 때문에 더 그랬나보다)
나도 겪은 일인데 마땅히 할 말이 생각이 안난다.
<일단 만나야겠다>고만 했다. 언제고 만나자 했다.
동생도 자신도 어안이 벙벙하단다. 뭐 딱히 감정이 없단다.
나도 그랬다. 암선고를 받으면 그 순간, 현실을 환자도 받아들이기 어렵고 보호자도 마찬가지다.
나는 오늘 하루도 평범할 줄 알았는데, 저 사진처럼 언제 비올 줄 모르는 그런 하루였나보다. 그저 저 먹구름이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가 생각하며,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인생이 고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