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닥의 생각 Feb 20. 2021

홀로있음의 즐거움

충만한 삶을 위하여


성전의 두 기둥이 하나의 지붕을 받들듯이
수금의 두 현이 하나의 화음을 연주하듯이

2013년 12월, 내 결혼식 청첩장 문구이다. 오래된 희랍의 시 한 줄을 인용했다. 시의 제목은 '외로움에 홀로 있음으로'였다. 하지만 결혼식 청첩장에 차마 '외로움'과 '홀로 있음'이라는 말을 넣을 수는 없어 가장 좋아하는 한 구절 만을 인용했다. 아내 역시 이 시를 알고 있었다. 11년 4개월 긴 연애의 장점으로 내가 왜 굳이 이 시를 인용했는지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성전의 기둥과 수금의 현은 각자 개별의 존재로 홀로 있지만 하나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기둥은 지붕을 받치기 위해, 현은 화음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이들의 가치는 함께 있되 홀로 있고, 홀로 있되 함께 있음을 통해 완성된다. 사람도 결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각자의 존재로 온전히 홀로 있을 수 있는 사람들 만이 진정으로 함께 일수 있다.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함께함이나 각자의 필요만을 위한 결합은 온전할 수도 완전할 수도 영원할 수도 없다.


말이 거창하지만 고요히 홀로 있는 시간이 그립다는 내 스스로의 투정이다. 골프도 게임도 야구나 축구 같은 동호회 운동도 해본 적 없는 내가 취미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봤다. 아무도 없는 달 밤의 등산,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이른 새벽의 달리기, 그리고 충동적으로 한 번씩 짐싸메고 떠나는 백패킹까지 홀로 있음의 즐거움과 외로움의 의미를 넘어 조금의 두려움까지 극복해야 하는 취미들이다.


유일하게 다른 사람들과 거친 호흡을 나누는 건 크로스핏 정도이다. 하지만 크로스핏은 가끔의 팀운동을 제외하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풀업을 한 개 더 할지 말지, 바벨을 한 번 더 들 수 있는지 없는지, 덤벨의 무게를 줄일지 말지, 그 짧은 몇 초의 순간에 수도 없는 고민과 핑계를 찾으며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한다. 그래서 운동의 시간은 고독하고 운동 후 찾아오는 희열과 보람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 된다.

연휴 마지막 주말의 크로스핏


다른 이와 고요한 호흡을 나누는 취미도 있다. 취미라고 하기에 연중행사 같은 여가이지만 스쿠버다이빙이다. 다이빙은 규정상 2인 1조의 버디와 함께 바다에 입수해야 한다. 이리저리 유영하며 산호초와 물고기를 살피는 것도 즐거움이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십수미터 바다를 뚫고 들어오는 햇살의 한 가운데에서 중성부력을 유지한 상태로 고요히 정지해 있는 것이다. 호버링이라고 불리는 이 스킬은 마치 비행체의 정지비행과 같은 상태를 물속에서 유지하는 것이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물속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뭐 어려운 것이냐 하겠지만 이 스킬이야말로 레크레이션다이버들에게 가장 어려운 기술 중 하나이다.


바다를 뚫고 들어온 햇살 가운데 수면으로 올라가거나 수심으로 내려가지 않고 좌우 앞뒤로 흔들리지 않는 중성부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의 무게와 다이빙 조끼인 BCD의 부력을 정확히 통제하고 핀의 미세함까지 조정해야 한다. 그리고 온전히 폐의 공기량 만으로 수심을 조절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 순간, 보이는 것은 햇살에 반짝이는 플랑크톤뿐이며, 들리는 것은 내 숨소리 뿐이다. 나는 이 순간에 완전히 홀로 있음을 경험한다.

이집트 후르가다에서의 다이빙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고독이 주는 성찰과 홀로 있음이 주는 즐거움은 그 자체로 나의 위로이다. 하지만 나이가 먹고 아이가 클수록 온전히 홀로 있는 시간을 갖기는 더 어려워진다. 그나마 누리는 것은 한 시간 일찍 출근해 이렇게 글을 쓰거나 약속이 없는 점심 시간에 주차장에 내려가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전자책을 읽는 정도이다. 요즘은 겨울의 아주 추운 날에 서강대교를 걷는다. 롱패딩을 뚫을 것 같은 추위 속에 왕복하는 서강대교는 여의도의 야경과 어두운 강물의 위엄을 홀로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얼마 전 서강대교를 걷다 생각했다. 시간과 장소, 돈과 장비를 들여야 홀로 있음을 즐길 수 있는 나는 아직 미숙한 인격인 것 같다고, 그래도 나는 홀로 있는 즐거움을 더 누려야 겠다. 그래야 이 미숙함을 숨기고 함께 함의 참 기쁨을 배워 갈 수 있을 것 같다. 홀로 있되 외롭지 않고, 함께있되 자신을 잃지 않는 삶의 충만함을 위해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