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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온 Apr 05. 2019

공감지수의 중요성



나는 공감지수가 높은 편이고, 공감지수가 높다는 것은 이해심이 많다는 이야기다.

누군가를 험담하고 화를 내고 욕을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이다. 이해가 되면 화낼 일도 욕할 일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누군가의 실수와 잘못에 관대한 편이다.

’ 그럴 수도 있지 ‘, ‘방황 시기도 있겠지’, ‘나도 저런 잘못을 하잖아’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으로 지내다 보니 마음이 편해지고 고요해졌다. 

누군가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 나에게 좋다는 것 나의 삶에 좋다는 것... 누군가를 험담하지 않아도 되고, 스트레스받지 않아서 좋고 서로 용서받고, 이해받고 사는 인생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변하지 않은 것은 나는 상대방의 잘못을 이해하는데 상대는 나의 잘못을 이해 못 한다는 것이다. 이해 못하기에 앞에서는 불만과 객기를 부리고, 뒤에서는 험담을 하고 다닌다. 그때 나는 부딪친다.

 불만과 객기, 험담이 아닌 존중과 배려가 있는 지적이라면 언제든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지적에 나는 흔들린다. 불편하고 화가 난다.

잘못은 누구나 다 한다. 완벽하지 못한 게 사람이다. 욕하고, 짜증내고, 화내고, 험담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겸손을 아는 사람은 쉽게 누군가를 욕하지 못한다.

만약 상대방이 잘못을 했다면 정중하게 상대방 기분이 상하지 않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 것이 배려인데 배려는 빼놓은 채로 짜증내고, 욕하면서 하는 대화는 더 이상 소통이 아니다.

첫째, 누군가 나의 잘못에 대해 예의 있게 직언하다면 난 언제든 수용한다.

둘째, 누군가 나의 잘못에 대해 예의 없게 직언한다면 난 기분이 상한다. 그렇게 무례한 사람에게 감정이 흔들리고 화가 난다.

셋쩨, 나는 이제 누군가의 잘못에 너그러운 편이고 혹여나 직언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충분히 그 사람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대화를 시도한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라고 많이 이야기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정말 자신을 돌아본다면 그것보다 더 이해 안 가는 행동과 잘못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것이 부모에게든, 친구에게든, 연인에게든, 지인에게든... 나의 과거와 잘못은 용서하고 이해하면서 남의 잘못은 이해 못 한다는 것은 위선이 아닐까?

남의 잘못을 지적할 거면 예의는 갖추고, 앞에서 못할 이야기라면 뒤에서도 하지 말자. 누군가는 미숙하고 잘 해내지 못하고, 나는 잘 해내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은 부족하고 나는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게 아니라 다만 내 환경과 주변이 사람들이 좋아서다. 상대방도 언제든 환경과 사람이 좋다면 잘 해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난 부족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항상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한다는 것.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 나의 감정과 생각을 외부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정말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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