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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선아 Nov 08. 2023

저녁 먹고 왔어

첫째 주 연재



<시>

저녁 먹고 왔어






밥도 정해진 시간에 먹어야 한다

평일의 정오 시청역 주변

그 틈에서 느끼는

한 시간 반짜리 해방감

기업은행 건물 뒤 흡연구역에서

갚을 필요 없는 불을 빌린다

손 찔러 넣은 주머니에서 몰래

창피한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는

합법적인 외도


반나절 이상 기름진 샴푸 냄새

장롱에 방치해둔 작년 겨울옷 냄새

알고 싶지 않은 인간들의 내음

진동하는 전철

소화되지 못한 점심이 요동친다


손가락 끝으로 눌러 들어온

남의 집 같은 현관

센서등 아래 마주한

두 명의 부양의무자

사적인 관계의 너와 내가

공적으로 사랑하게 된 것은

과실을 결실로 만들기 위함이고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이는

수분기가 다 빠진 여자에게

충혈된 눈시울을 한 남자는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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