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서(小暑)호, 넷째 주
소서(小暑)호, 넷째 주 특별 코너
<이거 내 이야기는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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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합동 원고
에세이 - 마음에게도 이자가 붙더라
글쓴이 -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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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인생사 잊을 수 없는 날은 무수히 많다.
가령 어릴 적 부모님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국경 밖으로 날아가 생전 처음 보는 나무를 본 순간이라던가. 내게 마음을 거절당하고도 삼 년 내내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던 아이가 내 친구와 사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주일 후에 내게 씁쓸한 표정으로 재차 고백한 날이라던가. 아, 오랜 친구들보다도 더 깊은 관계가 되었다고 느낀 친구와 한순간에 남이 되어버린 날도 있겠다.
이렇듯 잊을 수 없는 날은 너무도 많다. 그런데 잊을 수 없는 순간에 그 순간으로 인해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거라는 사실을 항상 직감하는가?
대부분의 순간에 나는 그렇지 못하다. 아니, 내 마음의 속도는 항상 머리보다 늦다.
더워서 정신이 혼미해지고, 시끄럽게 귀를 때리는 소음과 머리가 지끈거리는 수영장 락스 냄새, 다른 계절에는 보이지 않던 온갖 벌레들까지도 날 힘들게 하는 것만 가득했던 여름이, 분명 ’어서 지나가버렸으면’ 하고 바라던 나날들이 여름이 지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름이 도망쳐버렸다’고 느껴지게 만든다. 하루를 길게 만들어주는 느린 해와, 바닷가의 짠 내, 활기가 가득 찬 분위기, 풀벌레 우는소리를 들으며 했던 밤 산책까지 여름의 모든 게 다 그리워진다.
고등학생 시절 전부를 가장 가까이 함께한 친구와 편지 한 장으로 끝을 냈던 날, 신경을 온통 앗아가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관계를 끝냈다는 사실에 후련함과 개운함을 만끽했다. 하지만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던 관계는 고등학교 시절 추억의 전부를 공유하고 있었다.이 친구를 빼면 내 열일곱부터 열아홉까지의 설명이 불가한 지경이었던 것이다. 자각한 순간 이미 내가 끊은 관계를 다시 붙여달라고 애원하고 싶은 구질구질한 마음을 누르려 무던히 애썼다.
싫음의 감정은 좋음의 감정보다 앞서서 시야를 흐린다.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하게 만든다.
좋은 게 좋은 줄 몰랐던 날은 지나고 나면 더 그립다. 마음이 머리를 따라오지 못해 놓친 관계는 더 쓰리다. 마음과 달리 튀어나간 날카로운 말들은 하지 말걸 더 후회한다.
온전히 만끽하지 못한, 혹은 내 마음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한 무수한 그날들이,
나는 더 그립고, 더 아프고, 더 아쉽다.
잊을 수 없는 날은 왜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거라는 걸 미리 알지 못할까?
머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마음에게 이자까지 붙은 감정이 청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