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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선아 Nov 17. 2023

우정은 숙제가 아니었다

둘째 주 연재

<에세이>


우정은 숙제가 아니었다


   자주 가는 오겹살 집이 있다. 다닌 지 4년은 거뜬히 넘는다. 이 고깃집이 있는 동네에서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모두 보냈다. 여기 롯데리아와 파리바게트도 이제 새롭게 리뉴얼 됐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전교생의 방앗간이었던 마트는 구멍가게만 했는데 이제는 대기업 편의점 부럽지 않게 커졌다. 모닝글로리는 없어졌지만 개인 문구점은 건재하다. 커피에 반하다도 없어졌지만, 한 동네에 프랜차이즈 커피집만 세 곳이 넘는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는 동안 바뀐 것은 마을의 상권뿐만이 아니다. 나의 오래된 친구들과 오래된 나의 관계도 많이 달라졌다. 그들이 나의 글을 우연히라도 읽어주길 바라며 쓴다.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이유들로 친구들을 많이 보냈다. 정확히는 노력을 멈췄다는 말이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풀지 못한 감정 때문에 다툰 것도 아니다. ‘친구’가 멀어지게 되는 단순한 과정이었다. 나는 놓았고, 그들은 잡지 않았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필사적으로 지키는 것은 그들을 외로울 때 떠올리지 않는 것이다. 필요에 의해 가볍게 떠올릴 만한 인연이 아니다. 스스로 인간의 형태를 잡기까지 그들이 분명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부당한 미움을 받다 처음 이 마을에 온 내게 먼저 다가와 주었던 친구들이 있다. 이 사람들 덕분에 반 곳곳에 아는 친구가 생겼다. 활동적이지 않았던 나는 방과 후에도 단체에 어울려 운동을 하기도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함께 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그들은 정이 많았고, 의리를 1순위로 두었고, 함께 눈물은 못 흘려줘도 든든함을 주던 친구들이었다.


   친구를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지 서툴러 했던 나의 성격을 정반대로 만들어준 친구들도 있다. 학교생활 중 가장 중요하다는 고등학교 3학년을 줄곧 붙어 보냈다. 할 줄 알던 일탈이라고는 맘스터치 먹기였고, 아리따움 틴트 행사에 빠짐없이 출석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나를 재밌고 센스 있는 친구로 생각했다. 처음 보는 친구에게도 말을 잘 걸게 됐다. 같은 학교에서 수능을 보고 기념으로 피어싱을 했다. 그때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오락들을 함께 즐겼다. 나는 이들과 함께였을 때 가장 웃음이 많았다. 나를 어둡게 만들던 과거는 극복할 필요도 없이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깨닫게 만들었다. 나는 성인이 되어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감정 폴더를 만들었다. 그 폴더는 무서울 만큼 빠르게 용량이 커졌다. 나의 옛 기억들을 따로 보관해야 한다는 방법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도 시간도 다 지나서 회상하게 된다. 어떤 기억이든 회상하는 순간 미련 덩어리가 된다. 기억이 이래서 무섭다. 회상 다음은 상상이다. 만약 이랬으면 어떻게 됐을까. 미련 덩어리 다음에는 자책 덩어리가 생긴다. 이미 바꿀 수 없는 상황을 만든 게 모두 나의 과오일까 두려워진다. 이따금 그들을 떠올릴 때가 있다고 해서 나 역시 그렇게 떠올려지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 됐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과거를 지나왔다. 서로 누군지 알기만 하는 사이가 됐지만 아쉽지 않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충분한 우정을 나눴다. 인터넷에서 이런 얘기를 읽었다. 사람 사는 시기마다 친한 사람이 바뀐다는 얘기다. 나는 아직도 친한 사람이 무엇인지, 무엇이 친함인지 모르겠다. 우정도 개인마다 방법이 다른 것 같다.


   세상 물정도 운 좋게 피하며 살더니 여전히 편하게 살아 좋겠다. 문득 그런 시선을 느낀 적이 있다. 서로 힘듦의 원인이 다른 건데 정도가 다른 줄 아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당당히 말하던 친구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포장하지 않은 나의 부족함을 보여주는 게 습관이었다. 너는 할 줄 아는데 나는 그렇지 않은 것. 그래서 네가 대단한 것임을 말하며 상대를 높이던 습관은 잘못된 사랑 방식이었다. 나의 무지한 활기가 여럿에게 찝찝한 감정을 일으켰을지 모른다. 나는 가끔 나의 우정들에게 향하는 부적절한 사랑을 확인할 수 없어서 걱정이다.


   우리는 옆에 있는 사람보다 떠난 사람, 새로 올 사람에게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할 때가 있다. 그리워하거나 추억하는 데 현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막상 자신의 현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항상 바쁘다. 소식을 알 수 없는 사람은 궁금해하면서 소식을 띄워주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다. 나 없어도 잘 사니까. 하며 자신의 소홀함을 허락 없이 청산한다. 당신을 필요로 하는 중인 것은 모르고 필요가 없는 줄 안다. 나 역시 그런 우정을 보였고, 누군가에게는 딱 이 정도의 우정일테다.


   회고록 같은 이야기지만 결국은 감사 인사를 많이 돌려서 풀었다. 그들을 오늘만 떠올린 건 아닌데 대부분 몰래 그랬다. 오늘은 돌연한 용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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